친구의
아버지는 크리스마스 이틀 전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는
분에게 물론 날짜의 의미는 없다. 날짜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전적으로 살아 있는 자의 몫일 따름이다. 죽은 자는 어느 순간에서 와서 어느
순간에 갔다는 시간 속의 머무름만을 기록하며 희미한 흔적 속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나는 크리스마스 휴가를 망쳐 버린 그 분의 죽음에 대해
불평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한낱 허망한 날짜로 살아생전에 그분이 내게 보인 애정을 배반하면서.
의정부
성당 묘지의 깎아지른 벼랑 한 귀퉁이에 위태롭게 무덤이 만들어지고 시신은 윤이 나는 목관과 함께 묻혔다. 흙을 덮고 일꾼들이 그 흙을 밟는 동안
고인의 어린 손자는 내내 울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매장이 끝나고 초등학교 사 학년에 불과한 친구의 아들은 춥다며 매어 준 목도리를 눈물이
글썽이는 얼굴로 내게 공손히 돌려주었다. 더 매고 있으라는 내 말에 아이는 고개만 가로저었을 뿐이다.
성당
교인들의 기도 소리가 끝나고 친구는 어설프게 제사상을 늘어놓고는 혼란스러운 순서로 절을 하였다. 친구의 눈은 붉게 충혈된 채 부어 있었다.
구덩이를
팠던 일꾼들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시멘트 포장지 몇 장인가를 태워 문상객의 옷과 머리 위로 재를 한껏 날리더니 시큰둥한 몇 마디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
양반은 아직도 병원에 있는가?”
“한
달 보름 여를 중환자실에 있어.”
“영감하고는
어떻게 되는데?”
“내
처남이야. 이제 예순 둘밖에 안되었는데 꼬챙이처럼 말라서 피검사를 하려해도 피가 안 나온다는 거야. 매일 링게르만 꽂고 있으니 피가 나올거나
있나. 중환자실에 있으니 또 돈은 얼마나 쓰고 있는 건지, 원.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여기서 같이 풀을 벴었는데.”
그들은
담배를 하나씩 꼬나물고는 자리를 떠 버렸다.
밀양
박공 베네딕트 영민지묘, 묘비들은 이름과 생몰 연대를 간단히 기록한 채 담담한 검정 돌들로 찬 바람을 맞으며 묵묵히 서 있었다. 거기에는 모든
정한이 비정하게 생략되어 있었다. 친구 아버지의 묘비명도 진주강공 요한 윤환지묘로 새겨져서 스쳐 지나는 이들을 먹먹하게 할 것이 분명하다.
파란만장하던 삶은 하나의 이름과 생몰 연대로만 요약되어 그냥 그렇게 서 있을 것이다.
나는
친구에게 한 마디 하였을 뿐이다. 누구나 그렇게 헤어지는 것이라고. 그러나 그 말은 아무 내용도 위안도 담지 못했다. 친구도 그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내용 없이 어른의 죽음을 정리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고 약간의 피곤한 담소를 나누고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친구도
그리고 나도 알고 있다.
부모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은 불과 한 달여 남짓 문득문득 찾아들 것이고 그때마다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워 물다가는 이윽고 몇 방울의 눈물과 함께 말라
버리고 말 것임을.
돌아오는
장의 버스에서 같이 앉아 끄덕끄덕 졸다가 장례식을 치렀던 병원에서 의례적인 인사와 악수를 나누며 우리는 헤어졌다.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지나갔고 친구의 아버지 또한 지나간 날짜처럼 그렇게 가셨다. 누구나
그렇게 헤어지는 것처럼.
왕수님의 블로그
강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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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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