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게 있어 자식이란 무엇일까.
어머니의
마음이란 바닷가 백사장을 안타깝게 때리며 부서지는 파도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쉼 없는 사랑은 푸른 물결로 다가와 물거품으로 스러지는 동안에도
내내 지치는 법이 없다. 죽음이라 하여 그 맹목적인 영속성을 단절시킬 수는 없으리라. 죽음은 단지 시간과 공간의 주관적 상실일 뿐, 시공에 대해
개별적 존재가 갖는 제약은 존재에 내재한 객관적 보편에 의해 완강히 극복된다. 몸이 썩어 흙이 되고 또한 뼛가루가 바람에 흩날려도 어머니의
마음은 대양을 내리 비추는 일월과 마찬가지로 굽이치는 파도를 따라 한 없이 물결치는 것이다.
어머니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다다.
부처란
무엇인가. 그 또한 바다다.
1946년
여름, 해방이 된지 일 년 여가 지나도록 아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아들은 일본으로 끌려간 학병이었다.
서른한
살에 낳은 외아들은 떠나던 날, 대청마루에서 남편에게 큰 절로 인사를 했었다. 잘 다녀오겠다는 말에 묵묵히 고개만을 끄덕이던 남편은 아들의
뒷모습이 동구 밖으로 가뭇없이 사라지자 목을 놓아 울음을 터뜨렸었다.
살아생전에
저 아이 얼굴을 다시 못 볼 것이라며…….
남편은
자신의 말대로 아들의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한 채 1년이 지난 어느 겨울 날, 죽고 말았었다.
해방이
되고 만주와 중국 그리고 일본과 남방 각지로부터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왔다. 그러나 아들은 없었다. 해방 달포 전 히로시마 고사포 중대에 배치
받았다던 아들의 편지가 마지막이었다. 수없이 읽어 네 귀가 닳아 헤어진 편지를 만지작거리면서 기차역에서 매일 서성거려야 했다. 아침마다 오늘만은
제발하고 역전으로 향했으나 홀로 돌아오는 길의 저녁 석양은 언제나 목이 멨다. 저무는 길녘의 어린 소나무마저 눈물로 뿌옇게 흐려진 채 소리 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아들은
어디 있는 것일까. 남편을 앞세우고 저만을 기다리는 이 어미를 두고…….
여름이
가고 가을과 겨울을 거쳐 다시 여름이 되었다.
기적을
뿜는 증기 기차만이 힘차게 달려와 맥없이 가 버리는 나날이었다. 오직 애 끓는 그리움만이 쉴 새 없이 숨을 조여 올뿐 아들의 풍문은 지나치는
바람에조차 묻어 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먼 곳을 다녀온 이웃 사람이 그리운 아들의 소식을 전했다. 기차를 함께 타고 오던 어느 승객의 말에 의하면 아들은 폭격을 맞았다는
것이었다. 결국 아들이 일본에서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일본에서
왔다던 그 승객이 어느 마을로 갔다는 이야기만을 듣고 그를 찾아 나섰다.
어쩌면
아들의 죽음이 사실인지도 몰랐다. 1년 가까이 행방불명인 아들에게 아무런 해가 닥치지 않았다고 누가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찾아 노을이 지는 들녘을 하염없이 걷다가 서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석양이 너무도 야속하여 저무는 길가에 앉아
통곡하였다.
네가
살아만 있다면, 그래서 내 품으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나를 거적으로 둘둘 말아 길바닥에 내버려도 내 두 말하지 않으마.
결국
사람을 만나지도 못한 채 부은 눈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리고 미친 듯이 절을 찾았다. 아들을 영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누르고 대자대비 하신 부처님께 매달렸다. 어린 딸들에게 살림을 맡긴 채 손이 부르트도록 자비를 빌었고 피멍이 든 무릎으로 머리를
조아리고 또 조아렸다. 부처님께 엎드려 모든 것을 맡겼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들은
비웃었다. 자식이 이미 죽었는데도 빌고 다니는 것을 보면 미쳐도 보통 미친 것이 아니라고 다들 한 마디씩 하였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들의 생사를 떠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나날이기도 하였거니와 부처님만은 불쌍한 어미의 소망을 들어 주실 것만 같았다.
절을
올리다 쓰러져 잠든 어느 날, 꿈속에서 아들을 보았다. 아들은 온 몸에 흰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리운 아들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젖은 눈가를 씻고 다시 절을 드리기 시작하였다. 아들은 꿈에서처럼 이역만리에서 정말 고난을 겪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서도 이 어미는 절을 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밖은
어스름 새벽이었다.
며칠
후, 아들은 정말 붕대를 온 몸에 감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원폭을
맞은 몸으로 기적처럼 살아서 돌아왔다.
할머니는
손에 염주를 든 채 아버지를 기다리던 때의 이야기를 해 주셨다. 환하고 편한 미소를 지으시면서.
그
앞에 앉아 나는 '그래서? 그래서, 할머니?' 하였던 기억이 있다. 어린 마음에도 할머니의 말씀에 어떤 간절함이 느껴졌던 듯싶다. 그러면
할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 눈을 깊은 눈길로 바라보시곤 하였다. 나는 할머니의 그 눈길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어린 나를 데리고
법당에서 절을 가르치셨을 때에도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담고 고사리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눈치를 살피는 나를 할머니는 역시 깊은 눈길로 바라보고
계셨었다.
할머니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되던 해, 단오 날 돌아가셨다. 역시 떨어져 계시던 아버지를 기다리시다가 결국 손자의 손을 잡은 채 돌아가셨다. 그렇게
할머니를 애 타게 하였던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께 그러했듯 할머니께는 역시 어쩔 수 없는 불효였던 셈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리고 모든 어머니는 푸른 바다, 푸근히 감싸 안는 푸르기만 한 바다인 것이다. 부처님 또한 할머니, 어머니와 같이 바다가 되어
오시는 것이라 한다면 그것이 나만의 억지일 것인가.
왕수님의 블로그
강가에서
제목: 할머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