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진입하는 모든 길은 멀고 아득하다. 도로의 너비와 길이는 실체와 관계없이 오로지
좁고 길게만 여겨진다.
그 막막한 길을 따라 출근차량들은 도로 위에 늘 갇혀있어 강을 경계로 체증(滯症)이 빚어지기 일쑤다.
매일아침 이 답답한 움직임을 거느리고 강은 무정하게 흘러가는데 그 흐름이란 것
역시 양안(兩岸)의 콘크리트 구조물에 갇혀있어 숨이 막히기는 매양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 갑갑함을 뚫고 강의 남과 북을 쉴 새 없이 넘나들어야 하는 걸까.
강
저 너머로 ‘흥부의 박씨’라도 있다는 것일까.
조선시대의
수묵화에 담긴 한강은 담담한 흐름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한강은 그렇게 담백한 풍경에 머물러 있지 않다. 강의 이쪽저쪽으로 촘촘하게 인문적 질서가 부여되어 한강은 온갖 구분과 분별의 복잡한
경계가 된 지 오래다.
강을
사이에 두고 일상으로 빚어지는 정체(停滯)의 까닭은 그래서 자명하다.
강의
북쪽 사람들은 ‘남쪽에서 살지 못하고’, 남쪽 사람들은 ‘북쪽에서 살기 싫어서’ 길은 막힌다. ‘살지 못하는’ 사람과 ‘살기 싫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 머물지 못하고 강을 경계로 전투를 치르듯 허망하게 엉켜 매일 정체(停滯)를 빚어내는 것이다. 오늘의 한강이 담채화보다는
유화(油畵)로 좀더 끈적끈적하게 표현되어야 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
강을 오가야만 하는 사람들은 이를 갈며 동일한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빌어먹을 강을 다시는 건너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그러나
그것은 로또의 꿈만큼이나 허망하고 아득해 보인다. 더욱이 요즘의 1등 당첨금으로는 강남 아파트 한 채조차 사기 어려워졌으니 이래저래 강남으로
가는 길은 더욱 좁고 멀어졌다. 그래서 강을 건너는 모든 가난한 행렬은 낮은 자세로 엎드려야 한다. 개미떼처럼 땅바닥에 사지를 붙인 채 낮은
포복으로 기어서 강을 건너야 하는 것이다. 남쪽 어딘가에서 바람이라도 불면 더욱 알아서 기어야한다. 그 바람에는 쇳가루라도 묻어있을지 몰라서
고개를 빳빳이 세우다가는 만수무강에 이상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을 경계로 빚어지는 이 모든 사태가 정녕 누구의 탓이란 말인가.
높으신
분들의 말대로 정말 강남 아줌마들 때문일까.
대륙에서
불어오는 황사를 뒤집어 쓴 채 그 강을 건너다니며 나는 결국 이빨을 뽑았다. 무른 잇몸에서 아픔으로만 매달려있던 네 대의 좌우 윗어금니를 뽑으며
나는 비로소 세상에 씹을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합죽이가 된 대가로 아픔이 갔다. 입을 크게 벌려도 보이지는 않을 테지만 말이 새어나가고
마음이 새어나가고 삶이 새어나가는 느낌이다.
그렇게 봄은 왔다.
체증과
황사와 발치(拔齒)의 아픔과 함께.
그런데
계절은 강의 북과 남을 가리지 않고 공평히 볕을 내리는 것일까.
그래도
강은 흐르는데…….
(왕수)
"강가에서"
http://blog.daum.net/khl600
작 가 : 이재구
작품명 :
허수아비
제목: 한강에 내리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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