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간혹 생각이 날때면 으례 바늘도 함께 떠오릅니다.
그 바늘은 대(大)바늘입니다.
복학 후 대학 도서관 제 자리는 언제나 가장 좋은 밖의 풍경을 배경으로한 네개의 자리였습니다. 도서관 벽을 따라 책상들이 일렬로 놓여있었는데 책상 하나에 칸막이가 가로 세로로 있어 네개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도서관 문이 열리자마자 제가 들어왔고 닫힐때까지 복학생인 제가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었으므로 어느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자리였습니다.시간이 흐르면서 저 네개의 자리는 저와 저의 일당의 것으로 누구나 알아차렸으므로(기득권 세력이었으므로~~@@) 구태여 자리 보존을 위하여 애를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네개의 책상자리에서 제 앞자리는 오래전 하늘나라로 먼저 간 제 1년차 학과 후배가 차지하였고 저와 제 앞자리의 후배옆의 빈자리는 필요할 때마다 저나 제 후배가 선심을 쓰는 자리이기도 하였는데요...
어느날 화창한 봄날... 학과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으로 와 보니
허락도 없이 저와 제 후배옆의 빈자리를 글래머 여학생 둘이 "과감하게" 앉아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와 후배자리에는 김이 모락 모락나는 커피가 놓여져있었습니다.
"어느정도 싸가지는 있구먼...."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커피 두잔에 빈자리 두개를 그 글래머 여학생들에게 "시한부"로 팔아넘기기로 하였습니다.
"앞으로는 점심도 싸가지고 와 도라"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만....구태여 그런 표현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초밥이며 김밥이며 정성스럽게 싼 도시락 두개가 저와 제 후배의 책상에 놓여지기 시작하였으니까요.
실컷 놀다가 도서관에 잠시 들러놓고도 그 애들은 제가 들어오는 것을 알아채고 "가증스럽게도~~"
즉각 공부를 하고 있는 척하는 하는 거였습니다. 사실 그 두 글래머 후배들은 공부할 얼굴들도 아니었습니다.~~@@
"선배님 앞으로 옥자라고 불러 주세요... 이름은 비록 식모 이름이지만 전 정말 귀하게 자랐어요..."
"ㅋㅋ...그래그래 옥자라 불러줄께. 그런데 진작 이름을 알려주지 왜 이제서?"
옥자가 먼저 말을 붙이는 겁니다. 도시락이며 커피며 매일같이 받아먹었지만 사실 그 두 여학생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았거던요.
"선배님이 먼저 저를 알아볼 줄 알았어요"
"~~@@ ???"
"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구요?~~@@ 전 아시면서도 일부러 모른채하시는 줄 알았는데요...
저는 선배님 잘 알아요. 선배님과 같은 학과 동기분과 잘 지내거던요....
찻집에서 선배님과도 차도 같이 마셨는데....어머 이럴 수가....."
"...그랬구먼, 그런데 오늘은 왜 혼자와 있어? 항상 둘이 붙어다니더니"
" 선배님이 영자에게는 눈길도 주지않으니까...선배님께 귀띔좀 해 주라며 일부러 자릴 비운 거에요.
아무려면 제가 선배님께 프로포즈하려고 노렸겠어요?^^ 그러다간 선배님 동기인 00씨에게 맞아죽지요^^"
알렐루야!!!!
착하게 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 있네요.~~@@
다른 눔들은 눈에 불을켜고 다녀도 마땅한 아이들 하나 발견하지 못하던데요.
제게는 호박이 넝쿨채 굴러오다니요...
그녀는 밤이 좀 깊어지자 도서관에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막상 나타났어도 기분은 그대로 였습니다.
그래서 그날밤은 모른척 그냥 지나치기로 하였습니다. 제가 애 타는 것도 아닌데요..뭐
그녀들은 며칠 일정으로 자주 여행을 다닌다하였습니다.
글래머 타입이라 찝적거릴 사람들도 많을텐데 두려움도 없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러던지 말던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제게도 자주 여행을 가지고 졸라대는 거였습니다.
준비하는 시험도 다가오고 더욱이 방학이 온 것도 아닌데요, 하여 여러 핑계를 대며 거절하였습니다.
잠시 만나며 캠퍼스에서 차나 마시며 놀았으면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하였을텐데요...
제가 이러자 그녀는 옥자와 여행을 더 자주 다녀오곤하였다나요? 그래서 물어보았습니다.
"느덜끼리 강원도며 전라도며 바닷가를 쏘다닐때 누가 찝적거릴가 두렵지 않냐?
"그런 것 없어요. 있다해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거던요..."
그러면서 입고있는 자켓의 칼라 뒷부분을 만지작거리는 거였습니다.
"뭐여?"
"바늘이여요. 그것도 대바늘이지요"라며 칼라부분에서 바늘을 능숙한 솜씨로 뽑아내었습니다.
"치한들이 덤비면...덤빌때엔 이걸로 한방에 보내줄 수 있어요.ㅎㅎㅎ"
"ㅋㅋㅋ 그 바늘은 니들이 필요한게 아니라... 니들 보는(만나게 되는).... 남자애들에게 필요하겄네,
나도 어여 대바늘 하나 준비해야겄구먼 ㅋㅋㅋ"
이 말이 상처가 되었는지 그 후부터 그녀가 저를 멀리 대함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적극적이었다면 사정은 또 달라질수 있었겠지만...
저보다 제게 더 적극적이었던 그녀...아름다운 자태와 청순한 모습이었지만... 평소 그녀의 짙은 화장과 잦은 여행이 저를 그녀로 부터 멀리하도록 하였습니다. 간혹 그녀가 대바늘을 자켓 칼라에서 뽑아내 휘둘르는 가상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즐거운 상상입니다만..
그러나 그 상상은 한장이 넘어가면서 바늘을 휘둘르는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저라는 모습에 더 큰 웃음이 나옵니다.
아직까지 아름다움으로만 본다면 그녀보다 더 아름다운 여성은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만... 오늘처럼 이상한 날이면 문득 바늘과 함께 그녀가 오래 떠 오릅니다.
캄캄한 밤 그녀 집 대문옆 쓰레기통에 앉아서 입맞춤을 마지막으로 헤어진곤 하던 모습과 함께....
졸업후 얼마되지않아 그녀는 인천의 어느 교육자와 결혼을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잘 살아가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녀 대(大)바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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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