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만에 재봉틀을 꺼냈다. 손잡이가 달린 검은 통 속에서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뚜껑을 여는 순간
물씬 풍겼다. 얼마나 열어보지 않았으면 이렇게 되었을까 싶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검은색으로 된 고전적인 스타일의 전기 재봉틀은 우리 엄마가 61년도에 미국에서 시집올 때
가지고 오셨던 것으로, 그 당시 가장 좋은 신제품이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알아주는 싱어(Singer)이며, 아직 플라스틱으로 된 재봉틀이
나오지 않을 때 만들어진 것이어서 철로 된 게 꽤 무겁다. 엄마는 이것을 몇 개 안 되는 혼수품으로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오셨던 것이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딱 한번 70년대 중반에 기계에 문제가 생겨서 고쳤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국내에는 부품이 없어서 3, 4학년
이었던 나의 두 오빠들이 방학에 미국에 놀러 갈 적에 이 무거운 짐 덩어리를 들고 가서 고쳐 가지고 돌아왔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뭐든 만드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특히 천으로 인형 옷을 만들어 입혀 주는
것이 취미였다. 여름이면 나일론 천으로 수영복을 만들어주었고, 공단 느낌이 나는 천이 생기면 한복을, 털이 달린 코트까지 계절에 따라 인형이
덥거나 춥지 않게 해 주었다. 누가 뜨개질을 하고 있으면 그 실을 얻어서 숄이나 모자를 떠주기도 했다. 아무래도 바느질 솜씨가 서툴렀기에, 나는
엄마에게 재봉틀로 인형 옷을 박음질 해달라고 조르곤 했었다. 재봉틀로 깔끔하게 박음질 된 그 모습이 얼마나 프로페셔널하고 멋있어 보였는지 나는
재봉틀을 사용하는 방법을 빨리 배워야겠다고 벼르고 별렀다.
이 무렵은 사실 어머니에게 무척 힘들던 시기였다. 아버지가 3.1 사건과 YH 사건으로
감옥에 들락거리실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빠 면회를 갈 때에도 새로 만든 인형 옷을 가지고 가서 보여드리면서 자랑하곤 했었다. 그랬던 나의
모습을 아빠가 기억이나 하실까 모르겠다.
6학년 여름 방학에 드디어 재봉틀을 배워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고, 나는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면서 재봉틀을 돌리기 시작했다. 실을 꿰는 방법과 아래 실을 감아서 넣어주는 방법도 배웠다. ‘따 다다다다’ 하면서
돌아가는 재봉틀의 소리가 어찌나 경쾌하고 신기한지 몰랐다.
그런데 배운지 며칠 안 되던 날 사고가 터졌다. 손으로 천을 밀어넣는 순간 재봉틀이 더
돌아가지 않고 멈추었다. 내 왼손 가운데 손톱 가운데로 날카로운 재봉틀 바늘이 관통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소리를 질러댔고 옆에 있던
오빠들은 내 손가락을 재빨리 빼내어 둘둘 말은 후, 자전거를 태워서 병원으로 데려 갔다. 어찌나 심장이 떨리던지 별로 아프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의사는 약을 바르고 두툼한 보호대를 해 주었다.
손톱이 자라면서 바늘 자국이 서서히 빠져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날의 사고를
떠올리면 소름이 끼쳤지만 그래도 나는 재봉질을 포기하지 않았다.
최근에 아기를 낳은 친구가 한 상자 가득 옷이랑 아기 용품을 보내주면서 아기 배냇저고리를
만드는 세트를 보내주었다. 오랜만에 해본 바느질은 의외로 재미있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처음 세상에 나올 아기에게 내가 직접 만든 옷을
입혀준다고 생각하니 배냇저고리를 들고 있는 내 손이 따뜻해져 왔다.
작품 하나를 완성해 놓고 나니 그 친구가 만들었던 것 같은 아기 이불을 만들어 볼 욕심이
생겼다. 퀼트로 된 것이라서 훨씬 힘들 것 같긴 했지만 친구의 꾐에 넘어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패키지를 하나 구입하였다. 그 패키지 안에는 천과
만드는 방법이 들어 있었지만, 퀼트를 한 번도 해보지 않는 나에게는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불러오는 배 때문에 바느질하는 자세가 영
불편하고 어정쩡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주변에 물어가며, 시행착오를 겪으며 퀼트를 한 땀 한 땀 배워가고 있다.
아기 이불 덕분에 나는 엄마가 물려주신 낡은 재봉틀을 다시 꺼내게 되었다. 정겨운 소리와
오래된 냄새가 많은 추억을 떠 올리게 해 준 그 기계를 돌리고 있자니, 서원이가 신기한 눈으로 쳐다본다. 서원이는 자투리 천을 이용해 아기
모빌을 만들어준다고 옆에서 열심히 바느질을 하고 있다.
문영미
(민들레성서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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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엄마의 재봉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