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25:31-46(최후의 심판)
새해가 밝았다. 시작이라고 들뜨기보다
오히려 마지막 날의 관점에서 오늘을 비추어 보는 것이 삶의 지혜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은 마지막 날, 이른바 ‘최후의 심판’
이야기이다. 최후의 심판 때에 인자는 사람들을 양과 염소로 갈라서 한 쪽에는 상을 주고 한 쪽에는 벌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심판 앞에서 선 사람들은 한결같이 의외라는 표정이다. 상을 받게 된 의인들은 자기들이
언제 상을 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있느냐면서, 벌을 받게 된 자들은 자기들이 언제 그렇게 나쁜 짓을 했느냐면서, 다들 펄쩍 뛴다. 인자는
그들에게,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고 대답한다.
이 이야기를
흥부와 놀부 이야기와 비교해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흥부는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보고 측은히 여겨 치료해 주었고, 그리하여 큰 복을
받았다. 놀부는 자기도 그런 복을 받고 싶어서 억지로 흥부가 한 일을 따라 하려고 하다가 복을 받기는커녕 엄청난 벌을 받았다는 얘기다. 흔히들
이 이야기에서 흥부처럼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는 교훈을 찾아낸다.
하지만 착한 일이 복 받기 위한 모델이나 공식이 될 때 이미 그것은 변질되어 버린다. 흥부는 측은한
마음에서 아무런 목적 없이 제비에게 자비를 베풀었기 때문에 그 일이 아름답고 그 결과로 복을 받았다. 하지만 놀부는 흥부가 받은 복을 목적으로
하여 억지로 흥부가 한 일을 따라서 했기 때문에 그 일은 아름답지도 않고 복을 받지도 못했다. 무엇이 착한 마음이냐 하는 것은,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알 수 있는 것이다. 흔히들 부모는 자녀에게 흥부처럼 복을 받으려면 착한 일을 하라고 가르치는데, 이것은
여태껏 흥부 얘기 해놓고 끝에 가서 놀부가 되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최후의 심판 이야기는 흥부와 놀부 이야기와 차이가 있다.
흥부와 놀부 이야기에서는 놀부의 악행이 묘사가 되지만 최후의 심판 이야기에서는 어떤 악행도 묘사되지 않는다. 그들은 왕이 심판하는 말을 듣고
나서, “주님, 우리가 언제, 주께서 굶주리신 것이나 ……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도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까?” 하고 펄쩍 뛴다.
이 말은, 그들이 자기들 나름대로는 주님을 섬기고 돌본다면서 하느라고 했다는 말이다. 그들은 성전에
가서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봉사하고 헌신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성전 안에서 칭송받는 높은 지위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심판 때에도
틀림없이 큰 상을 받으리라고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복이나 상을 받기 위해서라면 천 일 기도를 마다하지 않지만,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주위의 작은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바로 그것이 그들의 죄다(42-43절).
반대로 의인들은, “주님, 우리가 언제,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
찾아갔습니까?” 하고 묻는다. 그들은 어쩌면 종교 행사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일상적 삶 속에서 이웃과 함께
나누고, 아파하고, 먹이고, 재운 사람들이다. 그것이 어떤 선행이거나 상을 받을 일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흥부와 놀부
이야기는 현세에서 박이 터져서 복을 받기도 하고 벌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최후의 심판 이야기는 현세가 아니라 종말에 받을 상과 벌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현세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제시할 뿐, 무엇을 이루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이루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 크리스천들은 어떤가. 새해를 맞이하면서 금년에는 몇 명 성도를 채우자, 몇 억
예산을 채우자, 몇 평짜리 성전을 건축하자, 이런 목표를 세우지 않는가. 또 개인은 복 받고 성공하는 삶, 부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세우지
않는가. 그런 목표를 세우는 것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위해서 어느 정도 기도를 해야 한다, 정성을 바쳐야 한다, 무엇 무엇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몰아세우는 것이다.
그런 요구는 우리를 모두 놀부 심보로 살게 만들 것이다. 올 한 해도 그런 목표를 채우지 못한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으면서, 우리 주위의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게 만들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을 세
유형으로 구분했다. 거미형, 개미형 그리고 나비형이다. 거미는 공들여 그물을 치고는 가만히 앉아 그물에 걸려드는 것을 기다리며 걸린 것을 먹고
산다. 그것은 그의 ‘영역’이다. 늙은 세대는 젊은 날에 얻은 지식, 경험, 지위 또는 명성들을 거미줄처럼 쳐놓고 가만히 앉아 그것에 걸리는
것을 먹고 산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그 그물을 이리 치고 저리 옮기는 정도일 뿐, 이미 생산적이거나 창조적 노력은 정지되어 있다. 이에
비해서 개미는 그저 부지런히 먹을 것을 수집한다.
이것은 이른바 현실참여 계층과 같다. 기존 가치관, 기존 질서의 요청에 끌려서 분주하며 그 안에
자기 자리를 구축하기 위해서 자기에게 딸린 가족, 사업체 등을 유지하기 위해 급급할 뿐이다. 그의 목표는 거미가 되는 일이다. 그러나 나비는 그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는다. 그는 꽃에서 꽃으로 전전하며, 쉬지 않는다. 화분(花粉)으로 살면서도 그것에 연연하여 거기에 보금자리를 꾸미려 하지
않는다. 마치 내 머물 곳은 여기가 아니라 저 하늘에라도 있다는 듯이!(안병무, 『너는 가능성이다』, 24f.)
이 세 가지 유형
가운데 크리스천의 삶에 가장 가까운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나비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과연 나비의 삶의 살고 있는 크리스천이 얼마나
되겠는가? 오히려 거의 다 거미나 개미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고생 끝에 어렵게 한 자리에 오르게 된, 이른바 성취를 한
사람들을 보면, 그의 성취 이전과 이후의 삶이 너무나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십중팔구는 그 자리에 오르기 전에는 겸손하고 노력하고
친절했으나, 그 자리에 오른 다음에는 거만하고 노력하지 않고 쉬지 않고 누군가를 비방하면서 분노에 차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왜 그럴까?
전도사나 개척교회 목사보다는 큰 교회 목사가 그렇고, 사원보다는 사장이 그렇고, 강사보다는 교수가 그렇고, 후보자보다는 당선자가 그렇다. 그들은
나비의 시절을 잊고 거미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교회도 그렇다. 유명하다고 하고 성공했다고 하는 교회들은 거의 다 거미형이거나
개미형이다. 마치 수퍼마켓이나 공장을 보는 것 같다. 요즘 목회자들은 농담이 아니라 진담으로 목회하는 것은 수퍼마켓 하는 것과 같다고 공공연하게
말을 하기도 한다.
요즘 구멍가게는 자꾸 없어지고 대형 할인매장이 생기는데, 교회도 그 풍조를 따라서 이제는
구멍가게에서 벗어나서 수퍼마켓이나 대형할인매장이 되려고 하는 것 같다. 대형할인 매장의 특성은 뻔하다. 목이 좋은 곳이어야 하고 주차가 편해야
하고 사람이 많아야 하고 물건 값이 싸야 한다. 교회도 그저 사람 많이 살고 부자들 많이 사는 곳에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주차를 편하게
하여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부담 없이 와서 듣고 헌금하고 갈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한다. 이거야말로 거미형 할인매장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그들은 덩치가 너무 커져서 도저히 나비가 될 수 없다. 이 꽃 저 꽃 날아다니면서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나비의 역할은
시민단체들에게 다 넘기고 있다. 이러다가 이제 생태계 문제는 환경운동연합이나 녹색연합에게, 경제문제는 경제정의실천연합에게, 정의문제는
참여연대에게 다 넘기고, 교회는 그저 건물만 위로 위로 올리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 시민단체들이 시청 앞과 광화문 앞에 나와서,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고, 소파개정을 위해 집회를
하고, 새만금 갯벌 살리자고 집회하면, 교회는 기껏, 그 옆에서 이라크 파병을 찬성하는 집회나 하고, 친미 반공 집회를 열어 통성기도나 하고,
왜 목사, 신부가 불교 의식인 삼보일배를 하느냐고 따지기나 한다.
세상이 다 썩어도 그래도 성직자들만은 바르고 청렴하다고 믿고 사는 것인데, 오늘날 유명하다는 교회
목사들 가운데는 이런 기대를 저버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목회자들이 돈을 좋아하고 화려한 삶을 살 뿐 아니라, 무슨 부정에 관계되어 세상 법정에
서서 판사로부터 창피한 충고나 듣고 있다. 이러니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헌금하느니 차라리 사회단체에 기부하겠다고 자조 섞인 말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그들에게 지팡이 하나와 신은 신발 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셨다.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쳐 주라고 하셨다(막 6:8-13).
그들의 모습 어디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들어앉아서 ‘여기는 내 영역이니 침범하지 마라’고 호령하는
거미나 개미의 삶을 볼 수 있는가? 오히려 자유롭게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다니며,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 생명을 살리는 나비의
삶을 볼 수 있지 않는가?
금년 한 해, 우리가 계획하는 것이, 내 영역에 거미줄을 치고 안주하는 것이 아닌지, 그저 개미처럼
끌어다가 모으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겠다. 그래서 온갖 수치(數値)와 목표에서 벗어나서, 날개를 접는 그날까지 나비처럼 늘 종말
앞에서 새 날을 살아야겠다.
민들레성서마을
제목: 나비 같은 삶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