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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80년도 중반에 목숨이 넘나드는 대단히 큰 수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뒤에 안 일이지만 담당 의사는 제가 6개월 정도를 더 살면 잘사는 것이라고 저희 가족에게 알려준 것 같습니다.

제가 입원하고 있었을 때 많은 곳에서 여러 신자 분들이 격려와 기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고마움은 십 수년이 흐른 지금도 있지 않고 살아갑니다.

제 담당의사가 제게 수술을 해야한다고 하였을 때 대단히 심각해 보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 죽으면 하느님과 함께 살고, 그렇지 않으면, 이 땅에서 하느님을 생각하고 살면 되지 무얼 그리 " 하는 담담한 생각으로 수술 등에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당당하게 살고 있습니다.

제가 수술 뒤 입원실의 침실에서 몸이 부서지고 야위어진 채 볼품없이 투병에 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면회를 오셨습니다. 잘생긴 제 모습을^^ 자랑삼아 살아오신 듯 하셨던 제 어머니가 부서지고 꺽여져 버릴 제게 중대한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 너는 아주 독한 놈이기에 이까짓 병으로는 죽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를 배고, 눈앞이 캄캄하고 정신이 혼미해져서, 어떻해서든지 너를 떼어내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짓은 다했지만, 너는 끝끝내 내 몸에 달라붙어 있다가 태어났지. "

그 말을 듣고 저는 우스워서 웃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6남3녀를 낳아서 길렀습니다.

제가 8번째입니다. 그 어렵고 힘들었던 시기에 자녀들을 줄줄이 낳아서 기르셨던 그 시대의 모든 어머니께 경의를 표합니다.

어머니는 8번째로 저를 배시고 낳으시기가 대단히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를 "떼어내려고 온갖 일을 다 하셨다"라는 어머니를 이해합니다.

저희 친척들은 어머니에게 " 이제는 그만 좀 낳으라 "라는 의미로 제게 이름을 동이라고 지어주셨습니다.

동이는 막동이의 준말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어머니는 제게 동생을 하나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제는 동이가 아닙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저를 동이라고 부르시는 몰지각한 친척 분들이 있답니다.)

어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 저는 어머니 입안의 혀였다 "고 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생각하시는 것, 혹은 제 스스로 어머니가 이렇게 생각하시리라 추측하면서 잘 해드렸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저와 함께 살았습니다. 형들 누나들을 내보내시며 살다보니까 제가 남아서 함께 살게 된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가 연로하실 때부터는, 직장에서 퇴근을 하여도 반드시 집으로 먼저 와서 어머니 아버지를 챙겨드리고 난 후에 야밤에 놀러를 가도 놀러를 다녔습니다.

그러한 생활은 여지껏 계속하였습니다. 어머니에게 있어서 저는 어머니의 자존심과도 같았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러나 저는 간혹 살기가 힘 들 때면 괜스레 어머니에게 화살을 돌리기도 하였습니다.

"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그렇게 못살게 굴어서 내가 이렇게 몸이 힘드는 것은 아닐까? "

어머니는 제가 수술했던 80년대 중순의 수술한 달 다음 달부터 파티마에서 성모님 발현하신 날인 매월 13일마다 저를 성모님께 맡겨드리는 미사를 한번도 빠트리지 않으시고 올려주셨습니다.

아마도 저를 배시고 저를 떼어내려고 하셨던 일을 보속이나 하려고 하셨을까요.

그러던 어머니가 13개월 전 손자 결혼식에 들리시고 난 후에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스스로 거동을 못하시고 간병인의 손에 의해서 식사를 하시고 대소변을 가리셨습니다. 간혹 정신이 맑을 실 때에는 스스로 키우신 손주에게 " 용감하게 살아라" 라는 명언을 써 주셔서( 뇌졸증으로 인하여 거동도 잘 못하셨지만, 말씀도 잘 못하셨습니다) 모두가 웃기도 하였구요.

지난주일(11.19) 점심을 드시게 하였는데 한술만 드시고 더 안 드시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입을 닦아드리고 눕혀드렸는데, 그 길로 어머니는 주님의 나라로 가셨습니다

어떻게 가셨는지 바로 옆에서 어머니를 눕혔던 저도 모를 지경입니다.

건강하셨을 때나 노약하셨을 때에도 전혀 돌아가실 마음이 없으셨던 저희 어머니는 이렇듯 마지막으로 제 얼굴을 보신 후, 눕혀드리기 위한 제 부축해드리는 손길 안에서 하느님의 나라로 가셨습니다.

인연이 묘하고 질기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지식한 남편을 만나 고생만 하시고 거기다가 자녀들을 줄줄이 나아 먹을 것, 입힐 것을 염려만 하신 어머니가 자식을 하나 더 가져 " 어떻게 살아갈꼬 " 라는 생각으로 저를 떼어 내기 위해서 온갖 일을 다 하셨다는 어머니는,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자식과 함께 평생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식만 바라본 후 주님의 나라로 되 돌아가셨습니다.

형이고 누나들이 학교를 다닐 때엔 도시락을 7개나 준비하기 위해서 매일 매일을 끼니 걱정으로 사셨다는 어머니는, 하느님을 아신 후에는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하느님만 의지하고 사셨으며,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고 사셨습니다.

하느님을 아신 후부터는 " 걱정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 하느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신다" 라는 믿음으로 여지껏 사셨습니다.

당연히 하느님께서도 어머니가 필요하신 모든 것을 " 알아서 "다 해 주셨습니다.

13개월 간 거동을 못하시고 말씀을 못하시어 무척 고통스러웠겠으나 우리 주님의 은총으로 주님의 나라로 되돌아가실 때는 너무도 평온하게 가셨음에 감사드립니다.

돌아가신 후 즉시 어머니를 위하여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처리하여 주시고 기도하여 주신 저희 행당동 성당 연령회장님 및 회원과 교우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가회동 성당의 교우님들, 그리고 저의 지우와 동료 그리고 어르신 모든 분들께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제는 제가 매월 13일마다 어머니를 위해서 미사를 올려 드릴 차례입니다.

아직 지상에서의 우리의 인연이 다 하지 않았습니다. 이 인연은 제가 이승을 떠나 주님의 나라에 가서야 끝이 날 것입니다.

오늘은 어머니 차례였지만, 내일은 제 차례일 것입니다. 내일을 기다리며 가드다란 인연을 기억하고 살아갈 것입니다.

추신 :

어머니는 박테레사이며 올해 83세였습니다.

저는 예전에 " 엄마는 죄가 많아서 지금 죽으면 지옥에 갈테니 지금은 죽으면 안돼" 라고 약올린 적이 많았습니다. 그 동안 투병 중이셨던 13개월간은 이승에서 연옥에서 받을 고통을 다 받으신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혹시라도 연옥 잠 벌이 남아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기도에 후하신 우리 교우님께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부탁 드립니다. 아울러 다른 연옥의 영혼을 위해서 한번씩이라도 기도를 하여 주시면 제가 더 고마울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일에 불철주야 도와 주셨던 하느님의 백성 모두에게 거듭 깊은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저도 이 은혜 잊지 않고 살아가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