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당신의 친구들에게 고생을 허락하시지!
5월 모심기가 끝나고 우리는 약간 한가한 시간을 즐겼다.
책도 읽고 요리도 하고 집안을 손질하면서 5월의 화사한 봄빛을 즐겼다.
5월 비가 갠 어느 날이었다.
마침 장날이어서 우리는 아침을 먹고 시장을 가기위해 자건거를 타고 나섰다.
논길에는 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앞서 가던 밥이 무슨 말을 할 요량으로 갑자기 브레이크를 잡더니 섰다.
바로 뒤따라 가던 나도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았다.
한 쪽은 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고, 다른 한쪽은 수로였다.
수로에는 물이 힘차게 흐르고 있었다.
자전거를 세웠으나 다리가 짧아 한쪽으로 자전거를 기울여야 설 수 있던 나는
자전거를 어느 쪽으로 기울여야할지 망설이다 그만
수로에 꺼꾸러 처박혀 버리고 말았다.
“신부님, 살려주세요.”
밥이 뒤를 돌아보고는 꺼구로 처박힌 나를 발견하고 달려와서
두손을 잡아 건져 올렸다.
나는 머리에서부터 등까지 온통 진흙탕을 뒤집어 썼다.
누구 다른 사람이 볼까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모르는 나를 세워놓고
밥이 웃으면서 진지하게 농담을 한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켜 주겠다는 의도였지만
나는 얼른 그 자리를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밥이 손짓으로 가로막으면 내 말 좀 들어 보라고 했다.
“어느 날 대 데레사성녀가 마차를 타고 달렸습니다.
그런데 그만 마차가 나뒹굴어 데레사 성녀가 진흙탕에 빠져 흠뻑 젖게 되었지요.
그러자 성녀가 하느님께 외쳤대요.
‘하느님, 왜 저에게 이런 골탕을 먹이십니까?’
그러자 하느님이 이렇게 대답했대요.
‘네가 나의 친구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그러자 대데레사 성녀가 대꾸했대요.
‘당신이 당신의 친구들에게 그렇게 대접하니까,
그러니까 하느님 당신에게는 친구가 없죠.’’
어때, 재미있지?
이제 마음이 진정됐제이.”
그날 밥이 시장을 봐왔고
나는 수렁에 빠진 것은 잊어 버린채 밥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쿡쿡 웃었다.
불행도 어떻게 대응하느냐 따라 즐거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부엌은 여자들의 도피처입니까?
우리는 처음부터 집안 살림도 함께 나누어서 하기로 했다.
그는 소위 진보적인 페미니스트였다.
생활비도 반씩 부담하는 것은 물론이고
요리와 설거지도 나누어서 하기로 했다.
그는 요리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점심 당번을 한답시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동안
나는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대개 남자들이 그렇게 하듯이.
점심때가 다 되어 상차림을 도울 양으로 부엌문을 열어본 나는 기겁을 하였다.
양배추는 처참하게 난도질 당해 있었고,
부엌 전체에 양배추들이 널려 있었다.
“와! 이게 뭡니까?”
밥이 꼬리를 내리며 고백했다.
“사실 나는 요리 할 줄 모릅니다.”
웃음이 나왔다.
그날 우리는 볼품없이 잘린 양배추를 먹으며
요리는 내가 담당하기로 하고 설거지는 밥이 담당하기로 했다.
그렇게 여러 달을 내가 주방의 왕으로 군림하면서 지냈나 보다.
나는 점점 더 밥을 주방에서 밀어 내고 있었고,
주방일을 한답시고,
내가 해야 할 사회적인 책임이나 개인적으로 자기 개발을 등한시 했나보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부엌문을 닫으며 아무런 뜻없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앞으로 부엌일은 제 혼자서 할께요.
부엌에 들어가지 마세요.”
밥의 얼굴이 금새 심각하게 변했다.
“마리아, 여자들은 왜 부엌에서 왕노릇을 하려고 하죠?”
“부엌일을 한다고 사회적 책임이나
인간적인 임무를 회피하려는 것 아닙니까?”
정곡을 찔렸다.
부엌일을 잘못하더라도 파트너와 역할을 함께 나누고
많은 시간을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헌신하는게 더 중요한 일이다.
여자들이여! 부엌에서 왕으로 군림하지 말고
자신들의 능력과 시간을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활용할 일이다.
밥이 나에게 물었듯이,
나는 종종 여자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부엌이 여자들의 도피처입니까?”
바다가 불러요. 오라! 오라!
봄 농번기가 끝나고 여름이 왔다.
조용하고 한가로운 시절이 시작되었다.
밥은 많은 시간을 독서하는데 할애하였고,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수영복을 들고 바다로 갔다.
밥의 수영솜씨는 뛰어났다.
그가 수영을 하면 거대한 항공모함이 쭉쭉 뻗어나가는 것 같았고,
마치 한 마리 고래가 유유히 꼬리를 치며 바다를 미끄러져 나가는 것 같았다.
밥의 바다수영 솜씨는 바닷가 마을에 곧 화제가 되었다.
나는 원래 물을 무서워하여 바다를 멀리서 구경하기를 좋아 할 뿐
바다에 들어가지를 않는 사람이었다.
“마리아, 왜 수영을 안하죠?”
“물에 들어가면 빠져요.”
“물에 빠져야 수영을 하제이.”
나는 그의 말이 맞다고 수긍하여 물에 들어갔다.
그러나 물이 여전히 무서웠다.
“마리아, 잘 보세요.
여기 나무토막을 떨어뜨렸는데 물에 빠졌나요?
떠있죠?
힘을 주지 말고 긴장하지 않으면 물에 빠질 수 없어요.
힘을 주고 긴장하기 때문에 빠지는 거예요.
그냥 안심하고 바다에 자신을 맡기세요.
그러면 절대로 빠질 수 없는거예요.”
“마리아, 수영과 인생은 마찬가집니다.”
“물에 들어와야 수영할 수 있는거고,
물에 빠지고 물을 먹어야 수영을 배울 수 있는거예요.”
보통 사람들은 수영을 배우면 빨리 헤엄쳐 멀리 나가려고 한다.
나도 그런 긴장이 있었다.
그런데 밥이 말했다.
“마리아, 수영은 꼭 멀리 헤엄쳐 갈 필요가 없어요.
물에 들어가 떠있으면 되고,
안심하고 물과 하나되어 즐기면 되는 거예요.”
우리는 바다에 나갈 때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고개를 넘어 새파란 물결의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면
밥은 손을 흔들며 신나게 외쳤다.
“바다가 부른다. 오라! 오라!”
로마 호수에서도 풍덩
하나의 기억은 또 다른 에피소드를 이끈다.
밥은 유별나게 수영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나이아가라 폭포 소리를 듣고 자랐으며
어렸을 적부터 캐나다 국경을 오가며 수영을 즐겼다고 한다.
밥이 세계골롬반 총회 개혁 위원으로 로마에 가 있을 때였다.
밥은 친구신부와 함께 로마를 산책하고 있었다.
그들은 호수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때 갑자기 밥이 옷을 훌렁벗더니
누드로 호수 속으로 풍덩들어가 수영을 즐기더란다.
친구신부는 놀랐다.
“밥은 정말 자유인이었습니다!”
춤추기를 좋아하는 신부
그 때까지만 해도 시골 사람들은 잔치를 즐겼다.
무슨 날이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함께 식사를 했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며 신나게 하루를 놀았다.
당연히 밥도 초대되었고,
사람들은 밥에게 노래를 시켰고,
함께 춤을 추자고 초대했다.
밥은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
사람들이 노래를 시키면 노래를 부렀고
춤을 추게 하면 시키는 대로 춤을 췄다.
그의 목소리는 가슴에서 울리는 깊고 굵은 소리였고
그의 노래는 근사했다.
잔치는 보통 밤까지 계속되었다.
밥도 끝까지 남아서 사람들과 똑같이 먹고
신나게 춤추면서 놀았다.
그는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좋아했고,
잔치분위기를 즐겼다.
언젠가 시골사람들이 임진각을 다녀와서
삽교천에서 저녁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는 오랫동안 위암으로 고생하던 할아버지 한분이 나오셨다.
할아버지들은 광장에서 장구를 치며 춤판을 벌렸다.
위암으로 고생하시던 할아버지가 특히 열정적으로 춤을 추었다.
밥은 그와 함께 신나게 춤을 추었다.
한 사람은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춤을 추는 것 같았고,
밥도 그와 눈을 맞추며 열심히 춤을 춰주었다.
밥은 그가 춤추는 이유를 아는 듯 싶었고,
그가 신나게 춤 출 수 있도록 기분을 맞추고 있었다. .
그리고 그 할아버지는 며칠 후에 돌아가셨다.
저녁을 먹으면서 밥이 말했다.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마지막으로 신나게 춤을 추어서 다행이야.”
밥은 아무 장소에서나 거침없이 춤추기를 좋아했다.
그는 무겁고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나에게 윙크를 보내며 이렇게 말했하곤 했다.
“마음을 가볍게 하세요.
그리고 몸이 춤추게 하세요.”
정마리아는 당진에서 농사를 짓고, 된장 만드는 일을 하는 여성농민이다.
여행하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방송작가이다.
민들레성서마을
제목: 춤추기를 좋아하는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