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 나는 치통을 앓았다.
살을 에는 듯한 통증 끝에 결국 네 대의 좌우 윗어금니가 뽑혀나갔다. 철거반이
지나간 것처럼 잇몸은 폐허가 되었고 뿌리째 뽑힌 잇몸의 구멍 사이로 바람이 새고 말이 새어나갔다.
술과 담배로 얼룩진 악습(惡習) 탓이었을까.
아니면 삶의 고뇌가 가져다 준 재앙이었을까.
가슴 깊은 곳에서 찬바람이 일었다.
이빨이 성했을 때의 무언가 씹던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그러나
내게는 그렇게 물 어금니조차 없었다. 그저 앞니로 오물거리며 음식을 먹어야 했고 대화중에 침이 튀지 않도록 주위를 기울여야 했을 뿐이다.
‘더 이상 씹을 수가 없다!’
생은 서서히 소멸해간다.
그 소멸의 징표는 이빨로 드러난다.
이빨이 빠지며 늙어가고 늙어가며 또한 이빨이 빠진다.
이빨을 갖춘 생명이 모두 그러하다.
세상과 마주한 삶의 첫 모습은 씹는 것이 아니고 빠는 것이었다. 빨면서 자라는 동안
시간은 하늘의 구름을 닮는다. 이때 세상은 어린 것의 내면으로 편안히 흘러든다. 세상과 아이의 내면은 하늘과 구름처럼 서로가 서로를 내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주장하지 않은 채 단지 서로가 서로의 배경이 될 뿐이다. 그래서 빨며 성장하는 동안 인간의 시간과 공간은 불화하지 않고 늘
화해한다. 빠는 일이 씹는 것보다 더 직접적이고 본능적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떠한 사랑이든 모든 사랑은 빨고 빨리는 것이지
씹고 씹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도 나이가 들어 이빨이 뽑힌 채로 무언가 빠는 일은 흉측하다.
여린 잇몸 위로 이빨이 돋아나면서 삶은 독자성을 띠게 된다.
누구나 빨면서 성장하고 씹으면서 세상에 나서는 것이다.
그리하여 씹고 씹다 마침내 씹혀서 소멸하는 것이 세상 생명의
이치다.
이제 곧 대통령선거가 다가온다.
그것은 씹는 재주의 경연장과도 같다.
누가 누가 더 잘 씹나.
강한 이빨로 누군가를 야무지게 씹는 후보들을 바라보면서 오징어라도 씹기 위해 나는
1년여에 걸친 임플란트 시술 끝에 빠진 어금니 모두를 다시 박아 넣었다. 새로운 이빨 덕에 나는 세상의 씹는 일에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
‘다시 씹으면서 관전할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누가 씹다 삼키고 누가 씹다 뱉는가.
나는 지켜볼 것이다.
왕수님의 블러그
강가에서
제목: 씹는 즐거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