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 가로수들이 어느틈엔지 단풍으로 믈들어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들은 장관입니다.
물론 아직도 가지에 힘차게 버티고 있는 나뭇잎들도 많지만
노란 나뭇잎들이 바람에 떨어지며 날리는 모습을 바라다보면
어머니가 생각이 납니다.
제가 한참 제 잘난멋으로 제 멋대로 날뛸때
어머니는
"너는 언제나 그 모습일줄 아느냐? 항상 앞날을 바라다보며 살거라"
하시곤 하셨습니다만
저는 어머니의 말씀은그냥 흘려보내며
그때 그 모습으로만 제가 천년만년 갈 줄 알았습니다.
제게 있어 어머니는 제 연인의 모델이었습니다.
하여 여성을 보는 관점은 어떤 면이던지 어머니를 닮은 모습이
제게 정겨움으로 다가와 인연이 없더라도
어머니 이미지를 닮은 여성들에게는 한번 더 지나쳐 보곤하였습니다.
이런 감정으로
제가 젊은 시절 집을 떠나 잠시 살았던 객지에서도
어머니께는 편지를 자주 보냈습니다.
어느날 집안 청소를 하고자 장롱이며 서랍이며
구속 구석 뒤지다가 어머니의 유품인 낡은 성경책과 기도서등을 발견하였습니다.
사실 그 유품들은 제가 잘 간직하여 둔것이지만 그 자체를 까맣게 잊고있었습니다.
성경책 뒷 표지안에는 제가 큰 수술을 했을 때 어머니가 미사를 봉헌해 주신 것, 9일기도 처음 시작한 날 등등을
깨알처럼 적어놓은 성경책이기도 합니다.
성경책안에는 제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들도 들어있었는데
그 편지들의 내용들은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같기도 하였습니다.
이러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어느날 제가 자취하던 집에 순시차 오셨는데 책상을 보더니 깜짝놀라시는 것이었습니다.
"너 말이다
공부를 합네 그래서 책들이 많이 필요합네 하면서 감언이설로 나를 녹이면서
돈을 보내달라하여 꼬박 꼬박 보내 주었더니만
책꽃이엔 왜 책들이 없냐......
난 니게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다....."
저는 어머니에게 연인에게 하듯 편지를 보내곤 하곤 하였지만
간혹 돈이 필요할 때엔 어머니를 감언이설로 후려쳐 많이 뜯어내곤 하였습니다.
물론 어머니도 반쯤은 제 속셈을 알고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낡은 편지지로 보여지는 제가 쓴 글들이 웃음기도 하지만
그 편지를 보면서 흐뭇해 하셨을 어머니를 생각하자니 제 마음이 뭉클해 지기도 합니다.
간혹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곤 하였을 때 문득 문득
"정제야..." 하면 낮은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 목소리는 길을 갈때에도 간혹 들리는듯 합니다.
뒤돌아보면 떨어지는 낙볍뿐이지만 어머니 목소리는 여전히 "정제야" 하는듯 합니다.
이 "정제야" 라는 소리는 여느때 저를 부르시던 호칭으로 그런 "정제야"가 아니라
제가 큰 수술을 받은후 중환자실에서 입원실로 올라왔을 때
제 소식을 들으신 어머니가
병원으로 달려오시어 누워있는 저를 바라다보고 제게 다기오시며 하신 첫 소리였습니다.
제게 어머니는 사실 성모님보다 더 큰 존재였고 가장 가까운 분이셨습니다.
관념적이나 신념적인 것이 아니라
저 뼈속에 새겨져있는 현실적인 사랑으로 채워진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래서그런지 저는 어쩌면 어머니를 위해서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낙엽이 날리는 산책길을 걸으면 간혹 "정제야" 하며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듯합니다.
이 소리는
제 양심을 깨우쳐주는 소리이기도 하고
낙엽을 밟으며 흔들리는 몸을 웅크리며 걸어가는 저를 격려하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정제야..."
언제나 이 소리를 생생하게 들을런지 모르겠습니다.
"너는 언제고 그렇게 니 멋대로 살줄아느냐"
라는 말씀이 그립기도 합니다.
물론 저는 그때의 체력을 가진 그대로가 아닙니다만
가을 밤이 깊어가니 어머니가 더욱 깊어집니다.
어머니가 가신 길을 한걸음 한걸음 따라걸으며 세월을 견뎌냅니다
제목: 테레사 테레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