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제키이야깁니다.
제키이야기라 하여 작금의 12살 배기 제키가 아니라 오래된 시절의 제키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두 마리의 제키를 키웠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첫 번째 제키에 대해서입니다.
중학교 일학년때 한남동 현장에서 얻어왔다며 스피츠 새끼 한 마리를 친구 아버지께서 제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간 이쁘게 생긴 것이 따로 있듯이^^한달 박이 스피츠 새끼는 너무 예뻤습니다. 하여 이름을 케네디 부인의 이름인 제키라 지었습니다.
제키는 어려서부터 너무 영리하였고 암놈답게 수줍음도 곧잘 탔었지만 어린 제키답게 활달하게 자랐습니다.
저는 이 제키를 너무 사랑하였고 제키도 저를 다른 가족들은 저리가라는 식으로 저를 특히 따랐습니다. 제키에게는 아주 멀리서 오는 오트바이 소리도 주인 오트바이인줄 식별해 낼줄 아는 힘이 있었습니다.
대문 바로 기대어있던 제키가 꼬리를 살랑 살랑 흔들어 댑니다.
<저것이 바람이 나서 그러나> 하고 처음에는 생각하였지만 그것은 곧 틀린 추측이었음이 드러납니다.
약 5분 정도 있으면 오트바이 시동 꺼지는 소리가 들리고 그런 후 형이 집으로 들어오기 때문이지요.
요 제키는 우리 집 뒷방에 사는 아가씨를 그리 미워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아가씨는 저 혼자면 된다”라는 생각이었을까요?
뒷방 아가씨가 출퇴근하고자 혹은 마실을 다녀오고자 대문을 들락거릴 때마다 물어뜯을 듯 짖으며 대들려고 합니다.
그 아가씨는 예쁜 제키와 친하고 싶어서 자기도 먹지 않은 맛있는 것을 사다가 제키를 줍니다. 그러면 제키는 아주 친한 척을 하면서 다 받아먹습니다만 다 먹었다하면 곧바로 등을 돌리며 이빨을 드러내곤 하였습니다.
이런 제키가 너무 귀여워서 중학생 때엔 저는 제키를 껴안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한테 “공부는 하질 않고 도대체가 개00^^하고 놀기만 한다”며 목침으로 얻어맞은 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래도 저는 아버지 눈을 피해가면서 제키를 껴안고 놀았습니다.
제가 커가면서 수학여행이니 혹은 다른 곳에 머물다 집에 오게되면 제키는 너무 좋아서 환장을 한 듯 집 마당을 수없이 뱅뱅대면 뛰어다니며 기쁨을 표시하였습니다.
이런 제키에게
인사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저는 군 입대를 하였습니다.
친구들이 환송식한다며 설치는 바람에 그냥 제키에게 그 동안 잘 지내라는 말 한마디 못하고 집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훈련소를 마친 후 저는 서울 우이동에 배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첫 휴가도 나오기 전 졸병 시절 둘째 누나가 결흔을 한다고 하였으며 저는 너무나 즐겁게도 특별 외출을 허락 받았습니다.
저는 외출을 나갈 기쁨으로 온통 들떠 있었으며 하여 외출을 나가기 전날 밤은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청했습니다.
자욱한 안개로 덮여있는 부대막사가 있는 우이동 북한산 중턱에 저는 서 있었습니다.
짙은 안개 사이로 제키가 제게 다가옵니다.
저는 너무 놀라고 기뻐서 제키에게 “어서 오라”고 불렀습니다.
제키는 안개를 헤치며 제 어느정도 앞에까지 다가오더니만 더 이상은 다가오질 않고 저를 바라다보며 웃는 듯 앉았습니다.
그 웃음은 아주 쓸쓸해 보였습니다.
예쁜 제키는 제가 군입대하기 전에는 나이가 점차 들어 그 화려하였던 털도 좀 빠졌습니다만 그래도 미모는 언제나처럼 한가닥 하였습니다.
개를 키워본 사람들이면
개들도 얼굴 표정으로 자기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제키는 저를 웃으며 그러면서 그 웃음은 어딘지 모를 쓸쓸함이 배인채 한동안 저를 바라다 본 후 안개 속으로 다시 가버립니다.
저는 너무 안타까워 제키를 연달아 부르며 따라가고자 하였으나 제 몸은 가위 눌린 듯 꼼짝 하지 못하고 그냥 버둥대다가 잠을 깨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졸병의 특별 외출이라는 특유한 분주함으로 인해 제키의 모습은 금방 잊었습니다. 시내에서의 일을 마친 후 잠시 집에 들렸습니다. 그리고 제키를 찾았으나 제키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키는 외출 전날 죽었습니다.
그날 제키는 뒷방에 사는 아가씨가 월세금을 주고자 안방으로 들어오고자 하자 물어뜯을 듯 달려들며 짖었다 합니다.
그래서 시끄러워 어머니는 미닫이문이 달린 툇마루 안에 집어넣고 문을 닫았습니다.
그 툇마루 아래엔 연탄아궁이가 있었으며 하여 툇마루 아래 미닫이이 문을 열어두지 않으며 연탄가스로 얼룩이 지는 곳입니다.
어머니는 뒷방 아가씨와 일을 다 치른 다음에도 제키가 그 안에 있음은 잊고 있었습니다.
툇마루 안에 너무 오래 가두어졌던 제키는 그 안에서 그만 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아가씨 때문에 자기가 죽을 것이라는 예측을 하여 그리 그 아가씨만을 미워했는지 모르겟습니다만 저는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한테는 한마디 말도 없이 멀리 군입대를 떠난 자기 주인을
제키는 언제나 올까하며
또한 얼마나 저를 그리워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길을 걷다가도 가슴이 아파옵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주인은 오질 않고 그럼에도 이승을 떠나야 할 제키는
그래서 머너먼 길을
이전의 그 모습으로는 다시는 저에게 오지 못할 길을 떠나기 전에
저를 한번이라도 보고 난 후 떠나고자 안개가 자욱한 우이동 북한산 중턱에 있는 저를 찾아 온 것일까요??
세상은 참으로 아픈 것들로 차 있어 보입니다.
“어떤 것들은 매우 아픈것이었다”라 생각을 할 때엔 늦어도 한참 늦은 후입니다.
한참이나 세월이 흐른 다음에서야 저는 제키를 위하여 여러 가지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이 기도는 제키를 위한 것 이라기보다 대개가 그렇듯 저 자신을 위한 것이었을 겁니다.
사람만이 구속을 입는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도 구속의 영광에 참여하게 됨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구속을 입어 영광스럽게 될 그때엔
우리에게도 눈물도 한숨도 드높은 슬픔도 없는 날이 될 것입니다.
그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며
(제 오른 쪽 옆에 앉아있는 예쁜이가 제키입니다. 당시 제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으니까 제키는 6살이 되었겠군요.^^)
제목: 제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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