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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re: re: re: 라기보다는 은총론의 차이
글쓴이: 사람과 자연   날짜: 2017.11.14 14:11:26   조회: 2556   글쓴이 IP: 211.46.27.71

그렇군요. 제가 형제님의 질문을 잘못이해 하였다 생각합니다.
그 점에 대하여 다시 한번 고찰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대속이란 용어부터 살펴보려 합니다. 예전에는 대속에 관하여 어떤 상세한 (대리나 대체 개념을 포함하여) 설명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오늘날에는
가톨릭이나 개신교의 사전에서 대속이란 용어를 찾으면 "속죄" 항목으로 이동하라는 표시가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대속이란 용어 설명대신(다만 천주교용어사전에는 대속이란 개념이 간단히 적혀있습니다.) 속죄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형제님의 질문은 "개신교의 substitude 개념과 가톨릭의 vicarius 개념의 차이"인데 이 차이는 영한사전이나 라틴어 사전(라영사전) 등을 살펴보면 그리 큰 차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형제님이 말씀하신 위 두 용어들의 차이점 때문에 의화론이 개신교와 가톨릭이 서로 차이점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총"에 대한 개신교와 가톨릭의 차이로 인하여 의화론도 차이가 생겼습니다.(제가 찾아볼수 있는 가톨릭교회교리서나 공위회 문헌 등  가톨릭교회의 공적 문서에는 어느 곳에서도 의화론에 대하여 vicarius 용어에 대한 해설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의화된다 할 때 "인간이 믿음을 가지게 되는 동기는 "선행(미리받는)은총"으로 이루어져 인간을 믿음을 고백하고(세례를 받게 되어) 의화은총을 받게되는 것인데, 사람이 믿음을 가지도록 준비하도록 하는 것은 인간 스스로의 응답 혹은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의화 은총을 받도록 미리=선행적으로 도움을 주는 은총(도움의 은총)으로 사람을 이끌기에 인간의 응답 역시 온전히 하느님의 은총의 결과라 하는 것이고 선행은총이라는 의미는 의화은총을 받기전 도움의 은총이 먼저 사람을 이끄시기에 상대적으로 선행은총이라 하는 것입니다. 선행은총은 의화은총을 받기전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교령은 선언합니다.(의화교령 제5장)  

참고로 종교개혁기때의 트리엔트 공의회 교령에 의화론에 관하여 인간의 응답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선언하고 있는데요...  

((( ─ 트리엔트 공의회, 6회기, 7장 참조: “결론적으로, 의화 과정에서 죄의 용서를 받고 그리스도께 참여함으로써, 동시에 믿음과 바람 그리고 사랑을 받게 된다”(DH 1530). )))

믿음으로 의회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께 참여함이란 하느님의 신앙에로의 초대에 자의로운 믿음으로 응답하여야 한다 라는 의미이며,  이 응답은 성령의 은총으로 그리스도께 참여하는 것이며, 성령은 그리스도인의 마음 한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이 신앙과 믿음과 희망이라는 삼덕을 실천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 재촉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성령의 은총에 따른 결과이므로 "인간의 노력에 의한 인간의 응답"이 의화에 끼칠수 있는 공로가 되는 것은 아니며, 만약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인류 죄를 대신하는  vicarius 개념이기에 인간측에서 응답하는 것이라면, 이런 주장은 반펠라치우스(펠라기우스)이단이 될듯 합니다.

 반펠라치우스이단은 믿음과 인간의 행위로 의화된다는 주장이거던요.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희생제물이 되었으므로 인간측에서의 응답함으로써 의화가 이루어진다라는 주장은 반펠라치우스의 주장과 다를바 없어 보입니다. 펠라치우스 이단이 인간의 행동만으로도 의화된다 라 주장한 것이 이단으로 선언되자 이를 보안하여 믿음과 인간의 행위(응답)으로 의화된다라 하였거던요. 이런 주장은 오랑쥬공의회에서 이단으로 거듭 선언되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가 의화과장에서 인간의 자유와 협력을 강조하지만 이는 하느님 은총의 절대적 우위성이라는 대명제 아래에서 이루어지거던요. 그래서 박준양 신부님의 "은총론-생활성서사 2008년도"에서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의화교령과 같은 가톨릭교회 문헌이 제5차 라테란 공의회에서와 같이 종교개혁보다 조금 더 일찍 발표되었다면 지금과 같은 교회분열은 없었을 것이다... "이라 하고 있습니다.

하여 의화는 단순히 믿음과 응답으로 이루는 것은 아니고, 의화된 그리스도인이 내재하시는 성령의 이끄심에 신망애 삼덕을 실천하는 응답 역시 성령의 은총에 따른 감화(결과)이므로, 인간측에 어떤 공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라고 교리서나 가톨릭-루터교-감리교 의화교리 공동선언에도 있습니다.

선행은총과 의화 은총과의 관계를 혹시 "substitude 과 vicarius" 차이로 설명한 것인지 아니가 하는 생각들지만 형제님께서 설명하신 것 대로라면 이미 말씀드린 것과 같이 가톨릭의 의화론은 반펠라치오 이단이 됩니다. 

하여 가톨릭의 의화론이 개신교와 근본적인 차이점은 인간의 응답과 믿음의로 의화를 이룬다는 것이 아니라, 선행의총(믿음으로 이르게 하여 믿음을 고백하는 응답...)과 이에 따른 의화은총으로 "인간의 실제적인 내적인 변화"(의화교령 제4장)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의화에 참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의화받은 사람은 내적변화가 완전히 이루어져 새사람 즉 성화된 사람이 된다는 거구요.

개신교 칭의는 인간의 실제적인 내적변화를 부정하였으므로 개신교 칭의는  "의인이자 죄인"이라 하며 내면이 부패한 죄인이 은총으로 덕을 이뤄 성화를 이루어 나간다 하며 이 성화론은 감리교의 완전성화론과 장로교의 불완전성화론으로 크게 갈려있습니다.

이런 차이점은 루터교와 가톨릭이 공동의로 합의하고 선포한 의화론에서도 잘 드러나 있는데 여기서 위에서 고찰한 것처럼 형제님의 질문 본문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의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의 차이(개신교의 substitude 개념과 가톨릭의 vicarius 개념?)가 아니고, 다시 말하면 믿음과 인간의 응답으로 의화가 이루어 지는 것에 대한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의 선행(도움의)은총과 의화은총의 구분과의화된 사람들의 응답(선행, 전례 참여, 완덕 추구 등 행위)에 대하여 가톨릭과 개신교가 어떤 차이가 있었느냐? 의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를 공동선언에서는 의화받은 사람의 응답 역시 "은총의 결과에 의한 것이므로 인간 공로는 아니다"라는 가톨릭측의 해설로 서로 일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종합해 보면 의화론에서의 그리스도의 희생제물의 의미를 두고, 개신교의 substitude 개념과 가톨릭의 vicarius개념의 차이가 가톨릭과과 개신교 의화론의 차이를 이루는 요소로 보는 것은 아니며 이러한 오해로, 개신교측에서 인간의 응답을 중요시 하는 가톨릭을 두고 늘 믿음과 선행(응답)으로 구원받는다라고... 가톨릭은 믿는다... 그러므로 가톨릭은 이단이다 라 주장해 왔습니다. 하여 의화론의 차이는 "substitude 나 vicarius의 개념의 차이"에서가 아니라...  "개신교와 가톨릭의 은총론의 차이와 의화는 실체적으로 인간의 내적 변화를 이루게 한다와 이루지 않는다"에 있습니다.

참고로 두 용어 즉 substitude과 vicarius의 차이에 대한 의화론의 차이를 다룬 라틴어사전이나 가톨릭사전들, 성서신학사전, 기톨릭교회교리서, 가톨릭-루터교-감리교 의화교리 공동선언 등등에서 전혀 발견하지 못한 제 무지로,  형제님의 이 단어와 관련한 질문에 대한 답변(의견)을 제대로 분석하고 고찰하지 못하였음에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 이년전에 치료한 시술이 재발하여 일주일전 치료받고 요양하다보니, 일주일을 그냥 보내게 되어 형제님께 더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아직 온전해지지 않았으나 글을 쓸수가 있어 오늘 마무리 지었습니다. 형제님께서 두 단어에 대하여 더 잘 아시는 내용이 있으시면 한번 게시해 주시면 제 판단에 좀 더 명확한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가롤로 님께서 남기신 글


+. 감사합니다.
질문을 드리기 너무 죄송할 정도로 너무 자세하게 긴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답변을 해주심에 항상 감사합니다.
제가 질문을 좀 더 명확하게 드리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제가 궁금했던 것은 가톨릭과 개신교가 '대속'이라는 같은 개념 안에서
개신교의 substitude 개념과 가톨릭의 vicarius 개념의 차이를 여쭙고 싶었습니다.

이 개념의 차이는
인간은 원죄로 인해서 자유의지가 완전히 파괴되어서
예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신 십자가 죽음이
인간이 해야할 모든 몫을 다 하신 것이기 때문에 (대리 혹은 대체: substitude)
이로 인해 인간편에서는 오직 의롭게 칭해졌음을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개신교의 구원론과

인간은 원죄로 인해 자유의지가 손상이 되었고,
예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인간의 죄를 대신하셨지만 (vicarius)
단순히 믿기만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 편에서도 하느님이신 당신 자신이 인간의 자리에 서서
vicarius하신 것에 대한 인간의 응답(파스카 희생 통한 구원을 기억하고 동참)하는
것을 통해서 의화되도록 해야한다는 가톨릭의 구원론의 차이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느님을 체험하는 은총이 전제되어야고 응답에 있어서도
인간의 노력 또한 하느님의 은총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겠습니다. 

결국, 저는
인간의 구속에 있어서 루터의 '칭의'와 가톨릭의 '의화'를 위한
인간의 자유의지 역할에 대한 중요한 차이를 가져오는 개념이었던
substitude와 vicarius 의 차이를 여쭙고 싶었던 것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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