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저녁을 일찍 먹고 영화를 한편 봐야겠다하여 재키와 저녁 산책을 미리 나섰습니다. 오후에 재키와 산에 다녀와서 그런지 재키는 임대아파트쪽으로 산책 코스를 정하네요
그쪽 코스는 비교적 산책 거리가 짧아 오늘 밤은 여유 시간이 많이 나겠구나 하였는데요.
경비실을 지나자마자 현관 주변에서 젊은 친구가 작고 예뻐 보이는 턱시도 검둥이 냥이와 놀고 있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혹시나하여 길르는 냥이냐 물어보니 처음보는 길냥인데 이렇게 사람을 잘 따른다합니다.
옆집 아줌마가 냥이 캔사료 가지러 갔다며 자기를 따라오면 길러줘야겠다라고도 합니다. 조금있으니 무던해 보이는 아주머니 한분이 캔사료 하나를 가지고 나타났습니다.
그 냥이는 허겁지겁 잘도 먹네요.
저는 저 아주머니가 길러줬으면 하는 희망을 가진채 그곳을 떠나 재키와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온 후에도 그 냥이가 어찌 되었나 하는 궁금증으로 다시 그곳으로 가 보았는데요...
냥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아주머니가 데리고갔나 하는 찰나에 바로 옆 자전거 주차장 안에 작은 턱시도 검둥이가 저를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야옹거리고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거기서 뭐하니? 하고 불렀더니 쪼르르 나와 제 신발위로 안기고 뒹굴고 하며 좋아하는겁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습니다. 이 냥이가 사람을 너무 잘 따르는 것을 보아 누가 이곳에 버린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라면 처음보는 사람에게 길냥이가 이리 잘 따를리 만무하겠고 또한 이곳에 그대로 있을리 만무하거던요...
이럴때 어찌 할 방법이 있을까요? 집으로 데리고 가자니 재키와 재키형이 걸리고(재키와 재키형은 냥이 노이로제가 있거던요), 그대로 두자니 처음보는 사람을 보고도 따라오는 것에 마음이 아프고... 그래서 9동 급식소 주변 옛날 검순이 집을 만들어 주었던 그곳으로 유도해 거기에다 일단 박스를 하나 만들어 주고 살도록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곳도 요즘은 큰 검둥이의 딸인 턱시도 큰 검둥이(... 아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이 큰 검둥이 딸을 그대로 빼 닮았네요... 그럼 큰 턱시도 아기인가???), 젖소 냥이들, 큰 검은얼룩냥이가 주로 그곳으로 먹이를 먹으러 오기에 어린 냥이에게는 안전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도 지나갑니다... 그래도 이 녀석이 저를 따라오도록 할 생각으로 휘파람을 불었는데요...
노랑돌이가 제 휘파람 소릴 들었는지(노랑돌이 집이 있는 그리고 제가 사는 8동은 이곳에서 가깝습니다.) 제가 있는 곳으로 달려오는 거였습니다. 달려오다가 턱시도 검둥이를 발견하고는 그 앞에 웅크려앉습니다. 서로가 한참 그리 앉아 있네요. 돌이는 지금 짝짓기 시절인지 자주 나들이를 하고 다니는데요... 돌이가 잘 봐줄까?... 하는 헛된 기대감도 생깁니다(사실 돌이는 나비가 잘 돌봐주어 나비와 함께 살고있는거거던요)~~@@ 그래서 8동 냥이 급식소에 있는 사료 그릇 하나를 들고 와 검둥이 앞 나무아래에 두었습니다. 이 두녀석은 계속 대치 상태네요. 검둥이는 그러고보니 아주 어려 보입니다.
돌이에게 이 녀석을 맡기고 8동으로 올라왔더니 나비가 마당에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나비와도 일찍 산책을 마치고자(나비와는 매일 밤 11시~12시 사이 아파트를 한바퀴 돌며 뚱뚱해진 나비살도 뺄겸 나비, 돌이와 산책합니다.)
나비와 아파트를 한바퀴 돌고 있는데 돌이도 어느새 쫓아와서 나비 뒤를 따르고 있네요.
냥이들과 산책을 마쳤으나 여전히 어린 검둥이가 마음에 걸립니다.
다시 그곳으로 가 봅니다. 멀리서 고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여자애와 친구인듯한 남자애 둘이서 검둥이에게 먹이와 물을 먹이고 있는 겁니다. 둘이는 진지하게 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자애는 집에 냥이가 두마리가 있어 이 녀석을 집으로 가지고 가면 아빠에게 혼날것 같기도 하고 큰냥이들이 얘를 할퀼것 같기도 하다며 친구에게 키워보라고 하네요. 그랬더니 남자애는 아빠에게 허락맡아야 한다며 전화를 걸까말까 망설이고 있습니다. 그냥 먹이와 물을 두고 가지는 말도 여자친구에게 언뜻 말하네요. 그러자 이 추운날에 얘가 아직 어린데 어떻게 그러느냐는 말도 하는군요... 이렇게 한참 서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착한 학생들도 많아 보입니다.
저는 애들이 고민을 하도록 내벼두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주방에서 구기자차를 만들고 있지만 그 검둥이가 눈에 밟혀 제대로 되질 않아 다시 그 자리에 가 보았습니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냥이도 여학생도 남학생도... 그리고 여자애가 검둥이에게 먹으라 준 물통과 먹이통도... 착한 여자애가 안고 간것이 틀림없습니다. 검둥이는 여자애에게 안겨 떨어지지않았고 좋아서 갸르릉 거리고 있었거던요.
그 애들은 저 보다 낫습니다.
이리저리 다 재면서 서너시간이 지나도록 결단을 제대로 못한 저지만
그 애들은 더운 물과 먹이를 먹여주고 안아주며 어린 냥이를 추운밤에 이대로 둘수 없다며 데리고 간것에 비교해 보면...
그래도 오늘밤은 편히 잠들것 같습니다.
그애들에게 어린 검둥이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길이 머물기 빌어봅니다.제가 몇시간을 망설이는 동안 그애들은 길지 않은 시간을 고민한 후 결단을 내린 것이 제게는 두고 두고 부끄러움이 될 것입니다.
사람을 보고 도와 달라며 울며 갸르릉대며 사람의 품에 안겼지만 저는 내려놓았고 저 애들은 안고 갔다는 것이 너무 대조적입니다.
그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머리숙여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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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