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일상생활안에서 사색하거나 기도할수 있도록
잔잔한 물가에다가 여러 나무들과 들풀 들꽃들을 심습니다.


ADMIN 2020. 0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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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성경 잡상(雜想) - 인간 존재의 이유?
  날짜: 2015.05.25 21:02:48   조회: 1866
각 대학의 졸업식이 끝난지 벌써 몇개월이 넘어갑니다.
졸업하면 바로 취직하여 자신과 가족들을 부양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여야 할 것 같은데요...  
청년 실업률이 갈수록 증가되며 그 수는 100만명을 육박하기도 한다네요.
이 숫자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만.
설사 취업을 하였다 하여도 정상적인 취업이 아닌 그냥 계약직으로 취업을 한거라 하니 취업 중에도 늘 그만두거나 다른 일자릴 찾는 생각을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일자리를 만들어 주지 못하는 사회, 일자리를 빼앗는 사회는 그 자체로 악이라 생각합니다.
노동-일자리의 가치를 생각하고 사회의 첫발을 지니는 청년들이 몸담을 일터를 지향으로 창세기 2-3장을 잡상(雜想)해 봅니다.  사실은 주님께 드리는 기도(묵상)이지만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이들이 있어 잡상(雜想)으로 이름지었습니다
.

간혹
창세기2,3장의 본문을 근거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하느님의 창조물임을 고백합니다.
더욱이 창세기 2장과 3장을 읽으면서도
얼핏, 읽은 기억이 나는 창세기 1장의 본문이 떠올리며
하느님께서 당신 모상대로(모습대로)(창세1.26) 창조되었음을 강조하며
인간의 품위에 대하여 주로 묵상을 하곤 합니다만..
 
창세기 1장에서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다하여
2,3장에서도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왜 창조되었을까요??
적어도 창세기2,3장을 읽어 보면 예전의 교리문답에서 외었던
<하느님을 알고 자기 영혼(자신)을 구하기 위하여 창조되었느니라>
과는 조금은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물론 지금은 성경을 가지고 교리를 논하는 자리가 아니므로 이런 것은 부질없는 생각일 뿐입니다만
여하튼 창세2,3장에서 인간의 창조목적은 분명히 제시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창조목적을 중심으로 창세기 2,3장의 본문은
본문안에서 치열한 구조들이 각자의 기호에 따라 펼쳐져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본문안에서의
사람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는
창세기 2,3장 본문의 첫 시작과  마지막 부분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2장)
4 야훼 하느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때였다.   
5 땅에는 아직 아무 나무도 없었고, 풀도 돋아나지 않았다.
야훼 하느님께서 아직 땅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땅을 갈 사람도 아직 없었던 것이다
  
땅은 삭막하다고 합니다.
나무도 풀도 그리고 물도 없다고 합니다.
왜??? 
이 삭막한 땅을 갈고 엎어 비옥한 땅으로 만들(갈)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창세기2,3장의 서론은 이렇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본문의 결론은 어떨까요???
 
(창세기3장)
23 에덴 동산에서 내쫓으시었다.
그리고 땅에서 나왔으므로
땅을 갈아
농사를 짓게 하셨다.  
 24 이렇게 아담을 쫓아 내신 다음
하느님은 동쪽에 거룹들을 세우시고 돌아 가는 불칼을 장치하여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목을 지키게 하셨다.
 
~~@@
본문의 결론은 엄청 냉정하네요.
아담(사람)을 창조하신 후 에덴으로 데려가셨고
온갖 것을 다 먹을수 있게 하셨건만...
혹시 우리 주님께서는 아담(사람)에 대해 다른 마음이 있었던 걸까요?
 
본문의 시작부분이 사람이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시작되었듯
이제 본문의 결말은 냉정하게 끝이 납니다.
 
"너거들은
너거들의 존재이유로서 땅을 갈아 농사를 지어라~~~
너거들은 애당초 영원히 살 운명이 아니었거던..." ~~@@
 
창세기 2,3장은 모상, (원)죄와 악(마) 등등 깊이 묵상할 것이 수두룩 하지만 본문은 우선적으로
사람의 창조 목적에 대해  즉 일을시키려고(땅을 갈아 농사 짓게) 하려고 사람(아담)을 창조하셨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 노동... 인간의 창조의 원초적인 목적처럼 보입니다.

하여 사람에게서 노동이라는 조건을 빼앗가 버리면 혹은 빼앗고자 한다면, 아예 제공을 하지 읺는다면...
그 사람에게서  삶의 원초적인 본능을 제거해 버리는, 버리고자 시도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곳 저곳에서 강제로 노동자에게서 노동을 박탈하여 격심한 항거가 있음을 봅니다.) 
 
본문은 창주주이신 우리 하느님 역시 일(노동)을 하시는 분으로 본문은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여 일, 혹은 노동은 인간 존엄성을 결정짓는 기준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가 노동임에도... <노동의 안정성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 다른 사람의 노동할 권한을 손에 쥐고 죄지우지 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또한 노동을 원하지만 노동의 기회 조차 제공하지 않는, 제공하지도 못하는 사회는
사람의 원초적인 본성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회이므로
결국
사회 존립 기반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이끌어 가는 여러 지도자들이 합심하여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 일 하기 원하는 사람들...
사회의 첫발을 내 딛는 사람들이 희망찬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실지로 그렇게 될수 있도록 우리 주님께 청원합니다. 
진정 이렇게 되기를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시기를 주님께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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