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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쓰다 보니 너무 길어져서 따로 올립니다.

하느님의 백성을 사목하는 교회의 교도권에는 당연히 순명해야겠지만, 교회에 대한 비판은 교회와 그리스도교의 건강성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천주교회는, 하나의 거대한 조직으로 2천년을 내려왔습니다. 다양한 신앙적 흐름과 세력들, 공시적, 통시적인 곡절들이 중층적으로 복잡다단하게 얽히고 설켜 있습니다. 전체적 단일성을 유지해 왔다는 점이 개신교와 다르지, 실상 내용에 들어가면 개신교에 버금갈 만큼 수많은 유파 내지 유형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성모님 문제는 이의 단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요. 게다가, 종교개혁 이후 천주교회는 반동 종교개혁의 일환으로 개신교와 차별되는 천주교 신앙의 요소로서 성모 신심을 강화해 나갔습니다. 조정제 형제님께서도 지적하신 바와 같이, 중세 이후 교회 내의 저술, 논문들 가운데 성령론은 거의 없으며 대신 마리아론들로 채워졌지요. 반동 종교개혁기의 성모 신심 강화는 이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모 신심의 과장과 왜곡에 대해서, 어떤 학자는 '하느님의 어머니' 교의를 확정한 에페소 공의회에까지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교의는 분명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자 하느님이시자 육체를 가지신 진정한 사람이심을 고백하는 명제이지만, 성모님을 성자 예수님보다 높게 착각하게끔 만드는 오해의 요소가 큰 게 사실이고, 에페소 공의회 자체가 참석 주교들 뿐만 아니라, 도시민 전체가 개입할 정도로 들썩였고, 그렇잖아도 여신 아르테미스 숭배로 유명했던 이 도시(사도행전에도 나오죠. 바오로가 곤욕을 치뤘던)가 그리스도교화되면서, 없어진 여신의 자리에 드디어 마리아를 앉히게 되었다고, 이 교의가 확정되자 도시 전체가 환호했다는 당시의 기록도 있다는군요.

심지어, 미국의 저명한 여성신학자 로즈매리 류터(천주교인이지만, 개신교 신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지요. 아마도 그의 진보적인 학문이 교회에 받아들여지지 않나 보지요)는, 가부장적 사회문화 전통 가운데서 하느님의 부성만이 강조되고, 하느님의 모성은 전혀 언급조차 되지 않는 가운데 그 신적 모성이 자연스레 성모님께 전이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합니다. 인류는 초월적 모성인 자연-여신을 그리워하는 종교적 심성을 갖고 있는데, 이를 억압해 온 가부장적 사회문화에서 성모님은 자연히 사실상 여신으로 격상되었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 속성은 경시되고 성부와 더불어 오로지 천상적 존재로만 드높여지면서, 마침내, 신적 모성이 덧입혀진 성모님께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로 들어온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도좌는 보편교회의 단일성을 지켜야 하기에, 이같이 복잡다단하게 얽히고 설킨 차원들에 대하여 최대한 포용적, 포괄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고, 사실 사목적 입장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저 또한 이해하고 남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고위 성직자분들 가운데에도 성모님에 대한 과도한 신심을 가진 분들이 상당수 계실 테구요.

그리스도를 인간으로 내려보내신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 있어, 성모님의 중요한 위치와 모범적 역할을 부정할 그리스도인이 없을 것입니다. 설령 개신교 근본주의자라도, 조금만 마음을 열고 생각해 본다면 수긍하리라 믿습니다. 성모 몽소승천 교리도, 성모님께서 하느님 안에서 안식하여 하느님께서 영화롭게 높여주셨다고 한다면 개신교라도 부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무염시태 또한, 교리 확정 이전에 수많은 격론들이 있었거니와, 적어도, 하느님께서 처녀로서 구세주를 잉태하라는 엄청난 과업을 주실진대, 그 소명을 받은 마리아가 그에 걸맞는 믿음의 그릇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했으리라는 것은 어떤 그리스도인도 부인할 수 없다고 봅니다(무염시태이건, 마리아의 생애 가운데서 믿음으로 구원의 은총을 얻어 의롭게 되었건 간에).

문제는, 말씀드린 바와 같이 복잡다단한 사정 때문에, 성모님에 대하여 분명하게 구별지어 말하기가 천주교회 내에서 그리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원초적 종교 심성에서부터, 분명 정통이지만,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큰 교리 명제, 성부와 성자에 대한 가부장적 윤색 및 성령에 대한 무관심, 이의 대칭적 현상인 신적 모성을 희구하는 대중신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2천년 역사와 광범위한 조직의 교회 안에서 퇴적된 현상이니, 사도좌의 차원에서도 어쩔 도리가 없고, 고위 성직자들 및 일선 사제와 수도자들 가운데도 이러한 성모 신심에 습합한 분들이 상당수일 것입니다.

더욱이, 한국 천주교회는 성모님께 봉헌되었을 정도로 애초부터 강한 성모 신심의 전통 아래 형성되었고, 레지오 활동에 힘입어 양적으로 급성장했으며 내적으로도 평신도의 능동적 참여와 공동체 활성화를 이루었습니다. 게다가, 근본주의가 대다수를 점하고 있는 개신교회와 대척적인 차원에서 천주교 신앙을 강화하다 보니 성모 신심이 더욱 강조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한국의 상황만 놓고 본다면, 그리스도교파들 가운데 천주교가 새 신자 교육이 가장 충실한 편이지만, 성서에 대한 단편적 지식, 성사와 전례 등에 치중할 뿐,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의 맥을 짚어주는 데에는 대단히 소홀하지 않냐는 불만을 저는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세사적 맥락 가운데서 성모님의 탁월한 위치와 업적, 성인 공경과 그분들께 전구를 청하는 까닭도 설명해야 되는데, 이러한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로 세례입교하고, 레지오 등 단체와 신심 활동에 참여하고, 고해성사를 보면 흔히 보속으로 묵주기도를 바치는데, 이 묵주기도가 성모님과 함께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이며, 성서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삶 묵상인데도, 자연히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인 줄로 알게 된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이같은 오류들을 본당이나 교구, 한국 천주교회 차원에서 제대로 인식하고 사목적 대처나 신자 교육을 하느냐? 안 하거든요. 위에서 말씀드린 중층적이고 복잡한 곡절들 때문에 인식을 못하는 건지, 알고도 심각하지 않다고 여기는 건지, 못 건드리는 건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성모님께 천상적인 속성을 전가하여 들어높이는 오류만큼은 반드시 교회 차원에서 짚고 넘어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대중들이 교리적, 신학적 구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더라도, 그렇기에 더더욱, 최소한의 사항은 짚어줘야 한다고 봅니다:

1) 성모님은 성자 예수님과 수직적 위계질서로서 높다는 의미의 어머니가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의 전적인 은총으로서의 구원 역사에 능동적으로 응답한 피조물 인간으로서 위대하다.

(이렇게 말하니까 어떤 교우님은 저더러 개신교인이라고 '색깔론' 공세를 펴더군요. 정말이지, 수구 정치세력과 언론들의 색깔론 공세가 생각나더이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이 점은 성모님께 대한 격하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신앙과, 소명에 대한 적극적, 능동적 응답이라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2) 성모님의 중재자 되심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재자 되심과 다른 차원이며(칼 바르트의 용어를 빌자면, 하느님과 인간의 '무한한 질적 차이'겠지요), 이 게시판에 장수복 형제님께서 올리신 [아! 마리아]라는 글에서 보시다시피, 20세기 전체 그리스도교 가운데서 걸출한 신학자의 한 분이셨던 칼 라너 신부님께서 말씀하시듯, 성모님뿐만 아니라, 우리도 '성인의 통공'으로 결속된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형제자매의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중재자 됨이라고,

아예 예비자 교리때부터 확실히 짚어줬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첫 출발을 할 때부터 애매하기 그지없게 교육을 받았으니, 그리고, 이후로도 그 애매함을 분명하게 해주는 교육은 없으니, 말씀드린 바와 같이 복잡하게 퇴적된 천주교회의 문화 가운데에서 올바른 신앙을 갖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첨언하자면,

1) 전문적인 신학의 영역에서 하느님의 모성성을 조명하는 작업이 활발하게 전개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성신학은 주로 진보적 개신교권에서 연구되어 왔으나, 성모 신심과 관련하여 천주교회의 건강성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교회 차원에서 여성신학의 연구와 담론을 장려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사목의 현장에서도 하느님의 자애로운 모성성에 대한 일깨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가 가부장적이고 고압적인 남성적 신을 믿는 종교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우리 안의 그러한 유물들을 없애나가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반드시 해 나가야 할 바입니다.

2) 성모님을 천상의 신적 존재인 양 들어높이는 데에 성모 신심과 성모님의 도움의 의의가 있는 게 아니라, 가장 충실한 하느님의 사람이자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당신의 삶 전체를 투신했던 성모님을 본받아 삶으로써 우리도 성모님처럼 주님께 다가가는 사람이 되고 마침내 성모님처럼 천국의 영광을 받게 되리라는 희망과 힘을 얻는 데에 참된 성모 신심과 성모님의 도움의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사실, 성모님은 웬만한 남정네들은 다 나가떨어질만한 믿음의 여장부였지요). 단지 어머니(성모님) 품에서 안온함을 느끼기 위해서의 차원이라면, 성모 신심은 자신을 부정하고 나를 따르라 하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어긋납니다. 종교적 안일함은 대중 신심의 심성이기는 하겠으나(따라서 이해는 갑니다만),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며, 하느님께서 성모님께 요청하신 소명(수태 고지 뿐만 아니라, 성모님의 일생 전체가)도 전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