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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남아있는 인연이 있다(2)
글쓴이: 들꽃   날짜: 2010.01.09. 00:20:53   조회: 14059   글쓴이 IP: 123.254.133.3
93년이 긴 세월이었다고 생각을 하였으나 되돌아 가신 후 그 세월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 보입니다.
문상 객들은 이구동성으로 <호상>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분께서 보내주신 문상 화환은 오색 꽃으로 수놓은 것도 있었습니다.
제가 얼핏 생각하여도 호상이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 떠나실 때에는 13개월을 누어 계셨지만
아버지는 한달도 채 누워계시지 않았습니다.

삼우미사 시 영성체 때 갑자기 아픈 생각들이 밀려들어 이를 악물었습니다. 이를 악물어도 슬픈 생각에 가슴은 녹아나는 듯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환갑 후 중풍을 맞았습니다.
어머니의 극진한 간호로 제대로 걷는 것은 아니었지만 홀로 산으로 공원으로 놀러다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약 30년 이상을 절뚝거리시면서 집안에서는 홀로 장애자로 살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지가 장애자라는 감정을 가져 본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아버지는 초등학교(소학교)에 워낙 성적이 출중하여 월반을 하셨다 합니다. 소학교 2학년을 마치고 곧바로 마지막 학년으로 월반하여 졸업을 하셨고 중학교 등을 진학하셨다 합니다.
월등한 성적으로 대학까지 졸업하셨고 일제시대에 수천대 일이라는 경쟁을 물리치고 일제하에 공무원을 하셨다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박정희 정권 때 일제의 잔재를 소탕한다며 사정을 칼을 번뜩인 시기에 일제 시대에 공직을 하셨다는 이유 등을 이유로 그만 불명예스럽게 실업자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하였습니다.(저는 상세한 것을 알고자 하지도 하지 않았고 하여 상세한 내용은 모릅니다만 중하위직 공무원으로 재직하셨던 것까지는 기억을 합니다.)
이때부터 아버지는 9남매를 키우기 위하여 모진 고생을 하셨습니다.

제가 대학교 2학년이었을 때 어느날 어머니가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시지 않은 이유를 설명을 해 주시며 다음날이 아버지의 판결을 위한 마직막 변론기일인데
변호사를 살수 없어 아버지가 직접 최종 진술을 하실 것이며 어머니는 저와 함께 재판장에 나갈 것이니
저는 이러한 제 아버지의 모습을 똑똑히 보고 절대로 재판정에 서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저는 손이 묶인 채 법정에서 변호사 없이 홀로 긴 시간을 통해서 자신을 변호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후 판정 결과 아버지는 무죄로 풀려나셨습니다.

환갑을 치루신 후 중풍을 맞으신 아버지는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말도 제대로 할 수없게 되었습니다.
말 한 구절을 하실 때에는 무척 어렵게 하였으며 정확하지도 않았습니다.
심한 언어장애까지 왔지만 말을 전혀 못하는 장애인들도 있는데 이 정도야 무슨 대수일 까 하는 생각으로 지나쳤습니다.

이럭저럭 아버지에 대하여 별다른 관심없이 살아왔습니다.
이런 아버지는 오년전 어머니를 먼저 하느님 품으로 보내셔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주님의 품으로 되돌아가신 후에도 산으로 공원으로 놀러 다니셨습니다.
다녀오신 후에는 어머니 사진 앞에 서서 뭔가를 중얼거리며 고해바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서운한 점이 있을 때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그러한 모습에 간혹 웃음이 나기도 하였습니다만
홀로 되신 후에도 불편한 몸으로 놀러다니다가 길을 잃으신 적도
공원에서 사람들과 약주를 걸치신 후 되돌아오는 길에
버스나 지하철에서 그만 잠이 들어 종점까지 실려가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대소변을 못가리시어(몸이 불편하여 거동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주변의 사람들의 눈을 찌푸르게 한 적도 평상생활처럼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주야를 넘나들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한달 동안은 거의 거동을 하지 못하고 누워만 계셨습니다.
주간에는 간병인을 모셨으나 저녁 이후에는 다시 아버지와 전쟁을 치루어야 했습니다.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는 침대에서 떨어진 상태로 침대와 테이블 사이의 방바닥에 끼어 계신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이러다보니 욕창이 생기게 되었으며 이 욕창은 퍼졌습니다.
약 일년반 전에 폐렴 등으로 한양대학병원에서 한달간 입원을 하신 적이 있어
한양대 응급실로 모셨는데 한양대병원에서는 응급실에만 약 11시간 동안 여러 가지 검사를 한답시며 아버지를 붙들어 두었습니다. 1년 반전에 입원한 병상 차트를 찾아 비교해 보면 입원이 쉬울텐데, 그렇게 하라고 했더니 응급실에서는 아버지의 (병상)챠트가 없어져서 새로 검사를 다시 하여야 한다하였고 결국은 <욕창 정도로 입원을 시킬만한 것이 아니 되니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여 구역 내 다른 병원들을 찾아보았으나 그 병원들도 <입원한 경력이 있는 한양대학병원에서 당연히 입원을 시켜야 한다>는 소견을 주며 또한 <해당 진료과가 없다>면서 입원을 거절하였습니다.
결국은 아무 병원에서도 입원은 하지 못하였고 결국 돌아가시기 전 7일 전에야 동네의 작은 병원에 입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양대병원에 가서 치료를 해야겠다고 말을 하였을 때 아버지가 매우 좋아 하였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모습은 하루도 넘기지 못하고 실망에 덮여 집으로 되돌아왔음이 되살아납니다.

이러 저러한 생각이 여기까지 떠오르자 아버지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얼마나 큰 상처를 고독안에서 안고 살아오셨는가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30년 이상을 몸을 끌다싶이 하면서 거동을 하였고
재판관도 설득시킨 열변은 몇 마디의 말을 하고자 하여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혼자만의 30여년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왔던 겁니다.
이 가슴 아픈 현실을 누가 이해를 해 주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럼에도 이런데 굴하지 않고 매일같이 홀로 이곳저곳으로 뒤뚱거리며 자신을 추슬러 온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즐거운 모습이었으며 고의로 약을 올리지 않으면 좀처럼 화도 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연옥을 사셨다고 생각합니다.
연옥이란 단순히 이승에서 지은 죄에 대한 잠벌을 받는 곳만이 아니고 오히려 정화에 목적이 있을 것임에 아버지는 이 이승을 연옥과 일체된 삶을 사셨음으로 지금쯤 하느님을 뵈오며 어머니와 함께 주님의 복락에 묻혀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많은 문상객들은 아버지가 단지 93세까지 이승에서 머문 것을 두고 호상이라고 합니다.
호상일 것이라 생각은 하지만 홀로 고독하게 30여년을 심한 장애를 홀로 안고 살아온 아버지를 떠올리면 제게는 호상만도 아니었다라 생각이 듭니다.

주님께 되돌아가는 길은 시간이나 장소가 따로 없다하지만
어제는 어머니와 아버지 차례였다면
오늘부터는 제 차례일 것입니다.
이 이승에 남아있는 아버지와의 인연은 이직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제가 주님으로부터 은총을 입었으니 이승의 인연이 다하는 날엔 상성에서 다시 인연이 이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남아있는 인연에 대하여 희망을 안고
아버지뿐 아니라 주님의 품으로 돌아 간 다른 모든 영혼들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길 기도합니다.



오늘(2010.1.9) 아버지 기일 제사를 앞두고 우연히 뒤져본 들꽃자리에서 있어야 할 아버지 선종에 대한 기억인 "남아있는 인연이 있다(2)" 도 언젠가 스팸게시물을 삭제할때 사라졌는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른 개신교 사이트에 게재하였던 이 글을 다시 복사하여 아버지 기일제사에 마춰 재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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