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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지도에 없는 마을
글쓴이: 김재성(한신대교수)   날짜: 2008.08.22. 00:42:34   조회: 19728   글쓴이 IP: 121.161.227.152

지도에 없는 마을
[빌 3:12-21]   

 

목표를 향한 달음질

오늘의 본문 12절에서 바울 사도는,“내가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요, 또 이미 목표점에 이른 것도 아니다”고 고백한다. 바로 앞 절에 보면 그가 이르려고 한 목표는,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 그리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 사도의 가르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크리스천들의 한결같은 소망도 이러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바울 사도 같은 분도 그런 경지에 아직 이르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가 하는 일은 단 한 가지, 곧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만을 바라보고 온몸을 앞으로 내밀어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이라고 한다(13절). 이것은 관람석에 있는 고관이나 관객의 모습이 아니라 전력질주 하는 운동선수의 모습이다. 어떤 자리에 오른 사람이라기보다는 후보자가 되어 겸손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당시 빌립보 교회의 신자들 가운데 열광적인 신앙에 경도된 사람들은 이미 자기들이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자만하고 자신들의 육신의 자랑과 업적을 내세우는 이들이 있었다. 바울은 그러한 것에 대응해서, 신앙은 지금 여기의 현실과 세상적인 것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목표를 향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기독교 신앙은 눈에 보이는 것이나 세상적인 것에 집착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바라고 구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바탕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라고 하였다(히 11:1). 눈에 보이는 것은 누구나 믿을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시고 그의 후손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을 때, 그것은 세상의 것으로 보장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약속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서 나아갔다. 성서는 이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바울은 이미 모든 것을 성취하였다고 하는 교만한 신자들에 대해서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마지막은 멸망이다. 그들은 배를 자기네의 하나님으로 삼고, 자기네의 수치를 영광으로 삼고 땅의 것만을 생각한다”고 엄중하게 비판하고 있다(18-19절).

하늘의 시민권

그리고 20절에서 바울은“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한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로마 시민권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시민권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로마 시민권이 그의 재판의 권리 등등을 보호해 줄지는 몰라도 진정으로 그의 생명을 지켜주고 변호하고 인도할 시민권은 하늘의 시민권이라는 것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로 유명한 피터 와이어 감독의 영화 <그린카드>에서, 브론테와 조지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위장결혼을 한다. 브론테는 식물원이 딸린 아파트를 구하는 자격을, 조지는 미국 영주권을 얻기 위해서였다. 이민국에서 그들을 수상히 여겨 조사를 해오는데, 할 수 없이 가짜 부부 행세를 하는 동안, 두 사람은 실제로 서로 사랑하게 된다. 마지막에 위장결혼이 탄로가 나자 조지는 브론테에게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즉시 미국을 떠나겠다고 한다. 어느새 브론테를 사랑하게 되어, 자신의 <그린카드>보다는 브론테의 <그린하우스>를 지켜주려고 한 것이다. 이민국 직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조지는 브론테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혼자 조용히 프랑스로 떠나려고 한다. 그런데 우연히 브론테가 떠나려는 그를 보게 된다. 어느새 그를 사랑하고 있고, 그가 없이는 안 되겠다는 것을 느낀 브론테가 이민국 직원도 아랑곳 않고 조지에게로 달려가서 그를 끌어안는다. 이민국 직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조지는 그녀가 <그린하우스>를 잃게 될까 봐 걱정을 하는데, 그때 브론테는 이렇게 말한다.“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처음에는 식물원이 중요해서 그걸 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조지를 이용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을 느끼는 순간 그렇게 얻고 싶었던 식물원은 하찮은 것이 되어 버린다. 그들은 아무리 아름다운 <그린하우스>도, 아무리 얻고 싶은 <그린카드>도, 사랑이 없으면 무용지물임을 깨달은 것이다.

바울이 말하려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우리들은 이 세상의 시민권만 얻으려고 애쓰지만 사실은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하늘 시민권>이 있다는 것이다. <하늘 시민권>이 있어야 세상 시민권도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크리스천들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그린카드>, 영주권은 얻으려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늘의 시민권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저 교회 출석하고 직분 맡고 일정 헌금을 하면 적금이나 보험처럼 나중에 하늘 시민권이 보장되는 양 생각들을 한다. 그러나 하늘의 시민권은 이 세상의 그린카드를 얻는 방식으로 얻을 수는 없다.

바울은 우리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말씀에 이어서,“우리는 그 곳으로부터 구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20b). 우리가 하늘에 시민권이 있다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산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살지만 종말에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그분이 주신 사명을 다하면서 그분 앞에 서게 될 날을 생각하면서 늘 오실 구세주이신 그리스도 앞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깨어 기다리는 종의 비유>(마 24:45-51)에서, 주인이 부재시에 이 세상만 바라보고 방탕하게 즐기고 하인들을 구타하는 악한 종은 생각하지도 않은 시각에 주인이 오면 심판을 받게 된다. 하지만 주인이 부재시에도 주인이 오실 것을 기다리면서 늘 주인이 앞에 있는 것처럼 산 일꾼은 크게 칭찬을 받고 주인의 전 재산을 맡게 된다.

바울은 바로 그런 선한 일꾼처럼 사는 것이, 목표를 향해서 앞으로 달려가는 삶이요,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그 분 앞에서 <하늘 시민권>을 간직하고 사는 삶이라고 한다.

지도에 없는 마을

이상은의 노래 가운데 <지도에 없는 마을>이라는 노래가 있다. 난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아주 작은 마을이라고 생각하면서 들었는데, 그런 것과 조금 다른 뜻이었다.

조그만 마을 돌담길 아이들 웃으며 놀고

담장 아래 작은 꽃 평화로운 낮잠을 자고 있는

바람이 이끄는 대로 구름이 가는 길대로

나는야 꿈 따라 헤맸지만

가장 아름다운 풍경 그대와 가고 싶은 곳

조그만 마을 오솔길

그대에게 물으니 말 해줬지

아무런 욕심 없이 그렇게 살고 싶어

그렇게 걷고 싶어 그대와


잃었던 거라 생각해도 마음에 행선지만 바꾸면 돼

어디에나 있는 곳 어린 시절 함께 살던 곳

바람이 노래해주고 별들이 그림 그리지

지도에 없는 조그만 마을

 

<지도에 없는 마을>은 욕심 없이 그대와 사랑하면서 사는 곳, 동심이 있고 바람과 별들이 있는 곳이다. 이상은이 그린 그 마을은 바울 사도가 말하는 하늘의 시민권과 많이 닮았다. 본래 이 구절에서‘시민권’(politeuma)라는 단어는‘나라’‘국가’라는 뜻도 된다. 즉 우리는 이 세상 국가와 다른 하늘 국가를 갖는다는 뜻도 된다. 로마의 식민지배세력과 그에 아부하면서 사는 온갖 추한 권력들, 그리고 그런 체제하에서 기득권을 향유하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이 되어 자기들의 배를 자기네 하나님으로 삼고 땅의 것만 추구하는 자들을 향해서, 바울 사도는 우리의 시민권은 그렇게 종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고 한다. 우리가 시민으로 속해 있는 나라는 <지도에 있는 나라>가 아니라 <지도에 없는 나라>라는 뜻일 것이다.

<지도에 없는 마을>은 지도에는 없지만 <지도에 있는 마을>을 의미 있게 하는 어떤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렇게 동심이 있고 사랑의 오솔길이 난, <지도에 없는 마을>이 자리잡고 있기에, 사람들은 종이로 된 지도를 뒤지면서 산속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동해바다로 가기도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하늘의 시민권>이 있기에 사랑할 수 있고 소망을 가질 수 있고 <이 땅의 시민권들>이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다.

며칠 전에 아는 분의 희수연에 참석하였는데, 그의 아들이 아버님의 생애를 사진으로 편집하여 보여 주었다. 첫 화면에 20대 시절의 그의 모습이 나왔다. 그 아들보다 젊은 모습을 보면서 시간의 의미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젊다는 것과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과연 그 20대의 얼굴은 그 분이 아닌가? 과거인가? 아니다. 그도 현재이고 지금의 모습도 현재이다. 2000년 전과 오늘이 찰나 같이 동일한데 하물며 50여 년 전과 오늘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리고 고인이 된 그의 부인의 젊은 시절 사진도 나왔다. 가족들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지인들에게는 그리운 분으로 거기 계셨다. 그것이 어떻게 과거이겠는가.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만이 모든 것이라고 한다면 사진들은 허무한 것이고 과거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지도에 없는 마을>을 마음에 간직하는 사람, <하늘의 시민권>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에게는, 사랑의 기억은 소중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생로병사를 겪는 오늘 우리의 모습만이 우리의 전부가 아님을 안다. <지도에 없는 마을> 같고 <하늘의 시민권> 같은,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생명책에 기록하시는 <하늘의 나>가 있음을 믿는다. 지금 여기서의 <비오스 Bios>의 생명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조에 Zoe>의 생명이 있음을 안다. 지금 여기에서 건강하고 부유하고 행복한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나를 낳으시고 이 세상에 보내신 주님의 사명을 다하고 사랑하는 것이 소중함을 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의 소망에 대해 가르치면서,“우리가 이 세상만을 생각하고 그리스도께 소망을 걸었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이다”고 한다(고전 15:19). 바울을 비롯하여 초대교회 신자들은, 이미 이룩한 것, 이 세상 것만 가지고 판단하면 로마의 귀족들이나 관리들에 비해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고 아직 오지 않은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살았기 때문에 그런 처지에서도 오히려 로마 귀족들을 능가하는 기쁨이 있었고, 죽음을 이기는 승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바울 당시에 헬레니즘 세계에서는 무엇이 영원한 것이냐는 물음이 있었다. 육체는 덧없지만 영혼은 영원하다는 사고도 그리스철학에서 있었다. 신령한 지식만이 영원하다는 영지주의도 있었다. 열광적으로 영에 취해 방언하거나 예언하는 것만이 유일한 현실이라고 보는 열광적 신자들도 있었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예언도 사라지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지지만,“사랑은 없어지지 않는다”(고전 13:8)고 한다. 이것은 불멸하는 것, 영원한 것에 대한 사고에 혁명을 가져온 말이다. 나아가“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이다”고 선언한다(13절).

그리스철학자들이 영혼만 영원하다고 할 때, 바울은 그것이 영이든 육이든 이 세상의 것으로서 영원한 것은 없으며, 사랑만이 영원하다고 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 흔히“남는 건 사진뿐이야”하고 허탈하게 말하는데, 바울은“남는 건 사랑뿐이야”하고 따뜻한 가슴으로 말한 것이다.

이 세상의 기업들은 이 세상의 지도와 주소록에서 확고한 지점을 확보하고 등록하려고 애를 쓴다. 교회도 이 세상에 건물을 지을 때는 부동산도 매입하고 등기도 하고 그럴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교회의 터는 그것이 다가 아닐 것이다. 교회는 그 터를 <지도에 없는 마을> 위에 견고하게 세우고, 크리스천은 <하늘 시민권>을 확실하게 간직해야 한다. 교회마다 무슨 동 몇 번지라는 주소가 있다. 하지만 그게 과연 그 교회의 실체인가? 그 교회에 누가 와도 거기에 아무도 없고 불이 꺼져 있으면 그것은 건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추운 겨울에 무슨 강좌를 하면서 노란불을 켜 놓고 교우들이 모여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할 때, 그곳은 정겨운 하나님의 집이 된다. 멀리서 가까이서 형제자매들이 와서 마음과 마음이 모여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흩어진 사람들이 주일마다 모여 친교를 나누고, 그 동네의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고, 음식을 나누고, 의지할 이 없는 노인들을 찾아볼 때, 사람들은 그곳을 그저 건물이 아니라 주님의 몸으로 느끼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교회이며, 그것은 지도에도 없고 주소도 없는 마을이다. 하늘에 있고 우리들의 마음에 있는 곳이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사랑의 삶을 살고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서, 이 소중한 <하늘의 시민권>을 누리고 또 많은 사람들이 갖도록 하기 위해서 교회에 모인다. 예언도 사라지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지지만 사랑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하였다. 앞으로 더 많은 세월이 흘러서 많은 것들이 변해가고 사라져 가도, 우리가 서로 사랑한 기억만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남는 건 사랑밖에 없다. 우리 모두가 앞으로도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하게 되고,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영원한 생명>과 <하늘의 시민권>을 누리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민들레성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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