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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글쓴이: 김재성(한신대교수)  날짜: 2008.06.12. 08:47:04   조회: 19838   글쓴이 IP: 211.253.60.49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고전 13:8-13

 
사진: 미사리의 정겨운 숲

김 재 성 목사    
(한신대 교수/ 민들레성서마을지기)    


고전 13:8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언도 사라지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집니다.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인 것은 사라집니다. 11 내가 어릴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12 지금은 우리가 거울 속에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 때에는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어린아이의 일

8절에서 바울은, 예언도 사라지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질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들은 모두 고린도교회의 열광적 신도들이 자신들의 신앙의 열심을 입증해주는 것으로 자랑하던 것들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한 것들이, 온전한 것이 아닌 부분적인 것들이며(9절). 어린아이의 일 곧 유치한 신앙이라고 한다(11절).

어린아이는 항상 자기중심적이어서, 부분적인 것을 일반화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세상에서 자기 아버지가 제일 힘이 세며 어머니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소풍 가기 때문에 날이 좋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이런 어린아이의 생각을 극복하지만, 종교에서는 예외인 것 같다. 많은 성인들이 여전히 신을 부족신의 형태로 이해한다. 구약성경은 이런 신앙을 뒷받침해주는 증빙전으로 이용되고 있다.

여호수아 앞세워 가나안으로 진군하는 성서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은 오직 유대인들을 위하여 이민족을 점령하시는 분으로 이해된다. 이런 이야기들은 그 본래의 맥락에서 벗어나서,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를 쟁탈하고, 강대국이 이민족을 진압하는 것을 정당화해주는 성서적 전거들로 악용되곤 하였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은, 부시 정권이 미국의 군수재벌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고, 또 중국과의 석유 확보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크리스천이라는 이유 때문에, 유일하게 미국의 우파 크리스천들과 그들에 동조하는 한국의 보수 크리스천들은 부시를 위해 기도했고, 이라크 침공을 지지했다. 그들은 여호수아 앞세워 가나안을 침공한 하나님이 오늘은 부시를 앞세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다고 믿고 있다. 같은 논리로 여차하면 북한을 침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이는 남의 일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전쟁을 부추기는 무시무시한 논리이다.

이러한 유치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을 진노하고 보복하는 존재로 그린다. 노아의 홍수는 신화적인 이야기지만, 그들은 이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에서 죄 많은 인간들을 싹 쓸어버리는 진노하는 신의 이미지를 얻는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에서는 진노하여 온 도시를 유황불로 초토화하는 신의 이미지를 얻는다. 그리하여 수십만이 사는 도시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수백만의 유대인들을 가스로 청소해버리는 그런 잔인한 행동들 저지른 장본인들 배후에는 크리스천들이 있었다.

이런 유치한 신앙의 절정은 병으로 인간을 징벌하는 신의 이미지이다. 유럽에서 페스트가 창궐하여 유럽 인구의 절반 가까이를 죽게 만들었을 때, 당시 교회 신부들은 그것이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나중에 그것은 페스트균에 의한 것이며 그 균을 옮기는 것은 쥐임이 밝혀져서 하나님의 진노나 징벌과는 상관없음이 밝혀졌다.

티모씨 드와이트(Timothy Dwight)는 장로교 목사이며 1795년부터 1817년까지 예일대 총장을 지낸 저명한 종교지도자인데, 그는 당시 새롭게 발견된 천연두 백신 접종에 반대하면서 설교하기를, “만일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어떤 사람은 천연두로 인해 죽도록 예정하셨다면, 백신 접종이라는 꾀를 써서 그 예정을 회피하고 무효화시키는 것은 무서운 죄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피뢰침을 발명했을 때도 종교 지도자들은‘벼락이란 신이 악한 자에게 내리는 형벌’인데 인간이 그것을 인위적으로 막는다는 것은 불경하다며 반대했다.

이러한 것은 과거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최근에 한국의 유명한 대형교회 목사가 하는 주일대예배 설교를 들었는데, 그 내용은 중국지진에 대한 것이었다. 요지는 중국이 잘 살게 되고 북경 올림픽까지 하게 되니까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벌을 받았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중국유학생들이 한국 경찰을 때릴 때 벌써 알아봤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행동이 좀 맘에 안 든다고 해서, 한반도 절반 면적에 지진을 일으켜서, 무고한 사람 수백만 명을 사상시켜 보복하는 신이 과연 기독교의 하나님인가?

온전한 것이 올 때 부분적인 것은 사라진다

바울은 10절에서“온전한 것이 올 때에 부분적인 것은 사라진다”고 말하고 있다. 11절에서는“내가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다”고 한다. 우리가 신학의 순례를 하는 것은 이런 온전하고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한번은 학생과 면담 중에 신학의 동기를 물었더니, 십계명에서 살인하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가나안 입주를 하면서 그렇게 가나안 사람들을 많이 살해할 수가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런 물음들을 묻다가 신학까지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신학도들은 흔히 구약개론이나 신약개론을 또는 구약신학이나 신약신학을 배울 때쯤에 충격도 받고 방황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개 그런 비평적인 내용들에 무감각해져서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새내기 신학생이 그런 문제들과 씨름하면서 오히려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서려고 하는 것 같다. 과연 나는 그런 문제가 해결되어서 이렇게 편하게 있는 것인가? 오히려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어 생각 없이 편하게 믿는 데 익숙해진 것은 아닌가?

성서 이야기 속의 하나님은 남성이며 막강한 전사의 이미지이다. “만군의 주 하나님”이라는 성서의 표현은 “군대의 하나님”이라는 뜻이었다. 이 하나님은 뿌리 깊은 부족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며, 하나님의 대외정책은 명백히 친유대적이었다. 즉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이집트인들에게 엄청난 폭력을 행사했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약탈하도록 이끌었다. 블레셋 사람들과 계속되는 충돌에서도 그의 백성을 옹호했다.

이와 같은 부족적인 뿌리를 갖고 있는 신관에서 생성된 기독교의 하나님은 기독교 역사에서도 여전히 부족적 권능을 행사했다. 이를테면, 312년에 로마제국을 장악하기 위한 밀리비안 다리의 전투에서 이 하나님은 콘스탄틴 황제를 도와 막센티우스를 쳐부수도록 하였다고 전해진다. 즉 그가 전투가 있기 바로 전날 밤에 하나님은 하늘에 십자가의 표지를 내걸었는데, 그 밑에는“이 표지로 정복하라”는 말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이 표지는 콘스탄틴 황제가 하나님의 선택된 자임을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스페인 무적함대가 1588년 영국으로 향하다가 폭풍을 만나 파괴되었을 때, 이 사건은 흔히 스페인의 가톨릭 신이 영국의 프로테스탄트 신에 의해 패배한 것으로 해석이 되었다. 즉 하나님은 스페인 군대를 파멸시키기 위해 하늘에서 폭풍을 내려보냄으로써, 영국의 역사는 성서에서 하나님이 사랑하신 백성의 지위를 차지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러한 하나님 이해는 확고하며 보편적으로 믿어졌고, 기독교인들은 근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1600여 년 동안 본질적으로 이런 신앙을 간직해 왔으며, 오늘날까지도 이런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도 들은 적이 있다. 고려시대에 몽고군사가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나섰다가 일본에 도착하기도 전에 거센 풍랑을 맞아 실패한 역사가 있다. 그때 일본사람들은 그것이 자기들의 신이 지켜준 것이고 그 바람을 ‘신풍’이라고 했다. 그런 신을 믿는 자들이 천황에게 목숨까지 바치는 헌신을 끌어냈고, 가미가제특공대라는 지극히 종교적인 군인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일본에게 식민통치를 받던 시절에는 한국 사람도 그런 이야기를 믿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미신 같은 이야기를 믿을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영국을 위해서 폭풍을 일으켜서 스페인 함대를 수장시켰다는 영국 사람들의 주장에 대해서 스페인 사람들은 터무니없고 유치하다고 느낄 것이다. 혹은 일본 사람이나 영국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성숙한 사람이라면, 그런 신앙을 군국주의적인 것이고 유치한 것으로 여겨 믿지 않을 것이다. 온전한 것이 올 때 부분적인 것은 사라지며, 어른이 되면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게 된다.

구약성서는 이런 부족적인 신이나 민족적인 신을 옹호하기 위한 경전이 아니다. 이미 구약성서 안에서 이러한 하나님 이해에 대한 반성이 있고 그것을 극복하는 새로운 하나님 이해가 나왔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법궤만 갖고 있으면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여 백전백승할 줄 알았다. 하지만 법궤를 빼앗기는 일이 생겼다. 하나님이 법궤를 대신 지켜주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않으실 수 있음을 그들은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마카비서에서는 적군이 쳐들어와도 안식일이기 때문에 무기를 들지 않아서 참패를 겪는 역사가 나온다. 안식일을 지키면 하나님이 대신 지켜줄 줄 알았으나 실제 역사는 반대였다. 그들은 비싼 대가를 치르고서 하나님은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을 위하여 대신 전쟁을 해주는 분이 아님을 깨달아야 했다. 그들은 북왕국 이스라엘은 다윗왕조도 아니고 예루살렘 성전도 없으므로 망하지만 남왕국 유다만은 절대로 안 망할 줄 알았다. 그러나 바빌로니아에 의해 성전이 파괴되고 왕의 눈이 뽑히고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도 하나님은 그들 앞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않았다. 그들은 바빌론 유배지에서 뼈저리게 느껴야했다. 하나님은 그런 부족신이 아닌 분이라는 것을.

이제 부분적으로 타당한 하나님 상이 아니라 더 온전한 하나님 상을 찾아야 했다. 하나님을 족장들을 쓰셨지만 이제는 이방왕 고레스를 쓰시는 분으로 이해된다. 이사야 45:1에서는 페르시아왕 고레스를 ‘마시아’(기름부어 세운 자)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유대민족이 고레스왕, 즉 율법도 모르고 야훼라는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역사 속에서 성취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예언자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말씀의 선포를 위해 소명을 받은 때는, 에스라라의 영도 아래 전개된 유대 개혁운동이 이방인과 혼인한 자들과 혼혈아들을 축출하던 바로 그 때였다. 요나서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인위적으로 제한한 것에 대한 항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비슷한 주제가 룻기에서도 나온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포로기 이후 시대의 열렬한 애국자들이 다윗 왕을 진정한 유대인으로 옹립하고 그 왕위를 회복함으로써, 이스라엘이 그의 원수들을 다시금 지배하고자 하는 국민의 열망을 표현하던 때였다. 당시 유대인들의 생활 속에서는 인종차별별주의도 어느 정도 드러나 있었는데, 다윗을 자신들의 인종적 우월성을 보여주는 “최우수품”으로 선전하고 있었다. 이에 대응하여, 룻기라는 작은 책의 저자는 아주 정겹고 사랑 소설 같은 재미난 이야기를 통하여 매우 중요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룻이라는 모범적인 젊은 모압여인은 유대인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되었지만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유대인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살면서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 이 이야기에서 그의 신실성은 보아스와 혼인함으로써 보상을 받게 된다. 유대인 보아스와 모압인 룻의 결합으로 태어난 아기의 이름은 오벳이다. 그는 이새의 아버지가 되었고, 이새는 존경하는 다윗 왕의 아버지였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가장 위대한 왕이 8분의 1은 모압인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것은 이미 구약성서 안에서 부족신이나 인종차별주의는 이미 온전하지 못하고 유치한 단계의 신앙임을 깨닫고 더 온전하고 성숙한 신앙을 향하여 나아가는 신학의 순례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이 나를 아신 것 같이

12절에서 바울은“지금은 우리가 거울 속에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 때에는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고 한다. 여기서 바울이 보려고 하고 알려고 하는 대상은 하나님이다. 바울 같이 훌륭한 분도 하나님을 자기가 다 안다고 하지 않고, 거울 속 영상처럼 희미하게 본다 하고, 부분밖에 알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이미 모든 것을 다 보고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굴고, 우리가 진리를 독점하고 있는 것처럼 타교단과 타종교에 대해서 배타적이 되는 것은 교만이요 독선이다. 바울과 같이 자기가 아는 것을 일시적이요 부분적인 것임을 고백하는 솔직함과 겸손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순례자의 여정에 필요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우리가 이 여정에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는데 그것은 오늘 본문의 처음과 나중에 나타나고 있다. 8절에서 바울은 예언도 방언도 지식도 사라지지만“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고 하며, 13절에서는,“으뜸은 사랑이다”고 한다. 결국 우리가 온전한 지식을 갖게 되는 비결도, 하나님을 희미하게 알지 않고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알 수 있는 비결도, 그것은 사랑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울의 신학순례의 결론이요 유치하지 않은 성숙한 신앙의 비결이기도 하다.

요한일서에서도,“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되는 것입니다”(요일 4:12)고 하였다.

바로 이런 깨달음을 우리에게 주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유대교는 다분히 부족적인 종교였고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도 율법을 이런 식으로 이해를 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시면서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완전히 달라졌다. 하나님은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라 아기 예수의 모습 또는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다. 전사의 모습이 아니라 사랑이 많으신 인자한 분 십자가에 달리신 분으로 나타나셨다.

부활절 사건 이후에, 바울 사도는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계승해서, 우리 몸이 성령의 전이라고 하고 우리 몸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였다. 그 몸은 선택받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사람일 수 있었고, 성별된 제사장의 몸이 아닌 세리와 죄인의 몸일 수도 있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고,“그 날에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요 14:20)라고 하셨다. 저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은 바로 청년 예수 안에 현존하셨고, 이제 그 예수는 특별히 성별된 어느 백성이나 특권층에게가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우리 안에 임재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완전히 달라졌다. 가부장과 제왕 그리고 제국주의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사랑하는 형제자매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현존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보고, 보혜사 성령의 역사를 보는, 완전히 새로운 하나님 이해, 완전히 새로운 역사관이 출현하였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한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대고 보는 경지이다. 우리 모두의 신앙과 신학의 여정 그리고 순례에, 바울이 말한‘그 날’, 하나님을 얼굴을 맞대고 보고 내가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충만하게 알게 되는 그 날이 속히 오게 되기를  바란다.

 

외론별 : 온전한 것이 올 때 부분적인 것은 사라진다....성인이 되면 어릴 때의 미숙에서 탈피하여 온전해 지듯이...그러나 어린 아이를 버리고 성인이 되어 온전해져도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랑.... 2008.06.18.
우리가 온전한 지식을 갖게 되는 비결도, 하나님을 희미하게 알지 않고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알 수 있는 비결도 사랑뿐...이것이 바울 신학순례의 결론이요 유치하지 않은 성숙한 신앙의 비결.... 2008.06.18.
바울 같이 훌륭한 분도 하나님을 자기가 다 안다고 하지 않고, 거울 속 영상처럼 희미하게 본다 하고, 부분밖에 알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그런데도 오늘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다 보고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2008.06.18.
구약을 어떻게 이해하며 읽어야 하는지 비로서 알것 같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거든요. 그것도 아직 어린 아이에 머물러 있음을 뜻하는 것이지만.... 2008.06.18.
바울과 같이 자기가 아는 것을 일시적이요 부분적인 것이라고 고백하는 솔직함과 겸손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순례자의 여정에 필요한 것... 김재성 교수의 글이 다 그렇지만 이 글도 참 좋은 내용입니다. 2008.06.18.
들꽃 : 김재성교수의 글은 사실 누구에 비하더라도 빠지지않는다 생각합니다..... 별형님도 김교수를 좋아하시는 것을 보니 진보적이라 ^^ 생각이 듭니다. 김교수는 2008.06.19.
기독교장로회(기장) 소속이며 개신교안에서나 사회안에서나 진보측의 축을 이루거던요... 그래서그런지 진보와 보수라는 것에 간혹 헷길릴때도 있습니다. 2008.06.19.
외론별 : 전 평소 중도를 자처하지만 실은 진보쪽에 더 가까운 편입니다.^^ 세상은 항상 개혁되어야 하고 쇄신돼야 한다고...다만 급격한 변화는 그 댓가를 염려하는 것 뿐이지요. 2008.06.20.
흔히들 해방후 근래까지를 격동의 세월이라 합니다만, 그야말로 눈알이 핑핑 돌 정도의 극심한 변화 아니었는지요. 먼 선조 때부터 수백년 동안 거의 변함없이 지속돼 오던 여러 관습들이 일시에 바뀌며 변화한 겁니다. 그런데 급격한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2008.06.20.
세상이 망할 징조라며 우리 부모세대들은 얼마나 걱정했는지요.^^ 물론 저의 세대들은 걸핏하면 옛것을 내세우며 나무라는 어른들을 싫어 했고요. 저 개인적으론...6,25 때 많은 좌경세력들도 그것이 너무도 갑작스런 일이라 잘 몰랐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2008.06.20.
해방후 이젠 "자유"라 하니까.. 푸르던 온 나라의 산들이 순식간에 벌거숭이로 변했지 않았습니까? 아버지 말씀이 생각납니다. "자유라 하니깐 뭐든지 제 맘대로 해도 된다면서 나무들을 마구 잘라 버리는데 누가 뭐라 하나? 왜놈들이 수십년을 키운 건데..." 2008.06.20.
이건 하나의 예를 든 거지만..그래서 국민들이 왜 변해야 하는지 알도록 홍보하면서, 즉 시간을 주면서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옛날과 달리 매체가 잘 발달돼 있어 훨씬 더 쉽습니다. 2008.06.20.
진보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런데 오늘은 또 그 시절에서 무척 변해 있고 당시 진보적이던 우리 세대들이 그 때의 부모님들처럼 보수로 전락한 상황입니다만...그러나 저의 세대들은 과거에 그런 일을 겪었기에 개혁과 쇄신의 필요성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2008.06.20.
그래서 전 기존의 틀에서 안주하려 해선 안되며 또 시대가 그것을 용납하지도 않는다고...그렇다면 항상 새롭게 진행하는 변화를 받아 들이고 가능한 빨리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게 옳고 유리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을 진보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2008.06.20.
들꽃 : 저는 공동체적인 평등(공산주의적인 아닌)을 추구한다는 면에서는 진보라 생각합니다만.... 정권이 바뀔때마다 개혁운운하며 희생양으로 공무원조직을 가지고 들먹이고 공무원에 대한 증오심을 심어주는 정치권에 대하여 혐오감이 생깁니다. 2008.06.21.
부정부패가 있다면 정치공무원작인 고위층이나 특권 업무층에 있겠지만(그것도 어느 조직에서나 있음직한 그런 정도에서) 이런 것을 침소붕대하며 2008.06.21.
공무원조직 전체로 몰고가며 자신들의 정권의 정통성을 내세우려고하는 정치인들의 위선적인 면엔 정말 싫더라구요... 2008.06.21.
국민들이 변해야하겠지만 정치인들의 이런 위선적인 면에대한 통찰력도 함께 증대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의 민원을 분석해 보면 안하무인격인 민원이 60%이상으로 되어보입니다. 정권이 공무원을 계속 폄하하고 메스콤들도 그대로 인용하니 2008.06.21.
사람들이 공무원을 정말 우습게 알드라구요^^ 직업공무원들이 자기 직업에 혐오를 느낄때 조직이 잘 되기란 정말 어려운데요....사회가 진보로 나아가야겟지만 모든 조직, 국민들의 사고방식도 좀더 진보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요즘은 간혹 2008.06.21.
민원인들 때문에 정말 못해 먹겠다...)라는 생각도 들때가 있어서요^^... 이를테면 쓰레기문제는 98%이상이 주민들이 주어진 쓰레기 배출 규칙을 지키지않아 생기거던요... 그런데 민원인들은 "느덜은 세금받아먹으며 앉아서 뭘 하기에 쓰레기들을 치우지도 2008.06.21.
않고 있냐?????" 라 하면서 제기합니다...... 정말 줘 팰수도없고~~@@ 남들은 돈주고 봉투사 쓰레기 버리는데 마구버리는 그런 쓰레기들은 그냥 무작장 치워만 줄수도 없고... 쓰레기버린 자들 붙잡아 과태료매기면 대통령 나와라하는 투로 대들고..... 정말 2008.06.21.
우리나라 일부 주민들의 행태는 막가는 진보로 보입니다.^^ 2008.06.21.
외론별 : 그래서 우리는 아직 선진국이 요원하다 하지요. 민주주의가 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국민들이 부지기 수 입니다. 성숙한 민주의식은 일정의 손해와 불편을 요구하지만 권리만 알고 의무는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2008.06.22.
파출소 내에서 조차 행패와 난동을 부리는 판인데 여타 행정기관에서야....우리나라가 원칙이 통하고 철저히 지켜지는 사회라면 얼마나 좋을까요..공무원들도 일하기 정말 좋을 것입니다. 이게 다 어줍잖은 설 익은 민주주의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2008.06.22.
요즘 주택가 골목길에는 온통 폐기물 더미들이 산재합니다. 물론 종량제 봉투 아닌 것들이지요. 구청마다 골치를 썩일 게 뻔한데...전 그에 대한 처벌이 너무 가볍기 때문 아닌지...싱가폴 정도의 강력한 법이 제정되고 시행되기 전에는 절대 해결 안된다고.. 2008.06.22.
제가 듣기로...우리 나라 법이 민주주의 본산인 미국보다도 훨씬 더 무르고 온건하다 들었습니다. 권리와 의무의 중요성은 똑 같아야 하고 그 실행 역시 똑 같이 하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2008.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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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퇴근길 현관앞에서 [3]  들꽃2009.01.24.20720
75   울지도 웃지도 못할 세상사 [4]  사람과 자연2008.12.27.19544
74   두번의 눈물..아름다운 주일  들꽃2008.12.14.20201
73   이런 일상 생활들 [5]  사람과 자연2008.12.05.19616
72   테레사 테레사  들꽃2008.11.06.21500
71   왕십리 고양이 [7]  사람과 자연2008.10.11.23231
70   주님 저를 죽여 주옵소서 [11]  사람과 자연2008.10.05.19994
69   지도에 없는 마을  김재성(한신대교수)2008.08.22.19727
68   육식에 대한 질문 [3]  박기호(신부)2008.07.25.20381
67   외로운 남자 [25]  사람과 자연2008.06.17.20175
66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26]  김재성(한신대교수)2008.06.12.19838
65   길들이기.... [19]  들꽃2008.06.06.20328
64   죽은 사람의 부활  김재성(한신대교수)2008.05.28.19760
63   아직은 철이없어 모르겠지만...  들꽃2008.05.16.19876
62   꽃 화분 그리고 사무실  들꽃2008.05.13.21212
61   보고 싶은 얼굴  김재성(한신대교수)2008.04.19.19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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