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한 제가 이곳 저곳에 올린 여러 글들이나 현재 펜가는 대로 쓰는 글들
또한 삶의 향기가 될수 있는 다른 들판에서 게시된 좋은 글 등을 종합하여 들꽃자리에 심습니다.
이 글들이 들판에 불어오는 바람처럼 잠시라도 휴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들꽃자리가 풀밭에 누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들판이 되도록 가꾸겠습니다.
글을 게시하고자 하시는 분은 카페를 이용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ADMIN 2026. 10. 09.  
LIST  MODIFY  DELETE  WRITE  REPLY 
   제목: 보고 싶은 얼굴
글쓴이: 김재성(한신대교수)  날짜: 2008.04.19. 13:29:19   조회: 19521   글쓴이 IP: 121.161.227.202

보고싶은 얼굴
창세기 1:24-31
김 재 성


하나님의 형상

창조 이야기에서 보면 창조의 마지막 날에 땅 위에서 기는 온갖 짐승이 지음을 받고, 같은 날에 사람도 지음을 받는다. 이런 짐승과 인간을 비교해 보면, 땅 위에서 산다는 점과 식물을 음식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말이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곤 하는데, 그것은 잘못 보는 것이다. 폰 라트는 구약성서에 낯선 현대 인간학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을 임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의 어떤 ‘영적 본질’이나 ‘존엄성’이나 ‘인격’, 또는 ‘윤리적 결단 능력’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문구에서 ‘형상(Zelem)’은 ‘초상(肖像)’의 의미도 된다. 고대 사회에서 왕들은 자신이 몸소 행차할 수 없는 왕국의 각 지방에 자신의 통치권에 대한 상징으로서 자신의 초상을 세웠는데, 이와 같이 하나님도 자신의 형상을 한 인간을 자신의 통치권을 대리하는 존재로 이 세상에 세우셨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동네의 중국 음식점에 들어갔을 때 음식점 안에 쑨원(孫文)의 커다란 초상화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들은 외국 땅에서 사는 외로운 처지에서 그 초상화를 보면서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으로는 그분의 지도를 받으며 산다는 다짐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 당시에 관공서 건물이나 학교 교무실 같은 데는 박정희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 액자 안의 사진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른 것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문제는 외국에 나가 사는 한국 사람이 자기 집이나 상점에 걸어두고 보면서 힘을 얻을 만한 지도자의 초상이 우리에게 있느냐는 것이다. 보면 반갑고 힘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초상을 우리가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아가서, 온갖 짐승들이 그렇게 보고 싶어하고 따를 수 있는 어떤 초상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그에게 짐승들을 다스리는 책임을 주신 것은, 인간을 짐승들 앞에 바로 그런 초상으로 세우셨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이 그것들을 만드시고, 그것들이 땅 위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복을 주시고, 그것들을 보기를 좋아하시는 것과 같이, 인간도 그것들을 그렇게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에게 주어진 어떤 영적 본성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동물이나 식물에게는 없는, 인간만의 특질로 여긴다. 이런 인간중심주의에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이란 동·식물에 대한 인간의 우위를 입증해 주는 것이며 그들에 대한 합법적 지배권이다. 그들은 그것들을 얼마든지 이용하고 착취할 수 있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멸종시키고, 그 종을 변형시키는 데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저 인간을 위해서 그것들은 멸종이 될 수도 있고, 변종을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서가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에게 그런 일을 할 권한을 보증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겐 그럴 권한이 없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짐승들의 권리

창조 이야기를 조금만 주의 깊게 읽으면 하나님이 이런 동·식물에 대한 인간의 권한을 얼마나 신중하게 제한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창조 엿샛날의 이야기를 보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동·식물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권을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온갖 식물을 먹을 것으로 주시지만(29절), 그것을 독점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신다. 짐승들에게도 들의 풀을 먹을 수 있는 권한을 주셨기 때문이다(30절). 게다가 사람들에게 육식이 허락된 것은, 창조 때가 아니라, ‘노아의 홍수’ 이후이다(9:2).

 

낙원의 순진무구한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육식이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에 세속의 역사에 깊이 발을 들여놓은 인간에게 허락이 되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나님은 마치 인간의 요구에 따라서 단계적으로 그것을 허용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인지, 거기에는 조건이 있다. 고기를 먹어도 좋지만, 피가 있는 채로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피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9:4). 고기는 먹어도 그 생명은 소중히 여겨야 하고, 짐승들이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건강하게 누릴 수 있도록 관리하는 일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육식의 권리만 취하고 그 생명을 돌보는 책임은 뒷전으로 하고 있다. 식탁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고기를 올리면서도, 그 고기가 식탁에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는 보려고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축산업계의 사정을 좀 아는 이들은, 소, 돼지, 닭 따위를 기르는 현장을 직접 보면 그것들을 먹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상품으로서 고기를 생산하는 것 말고는, 가축들이 좋은 환경에서 건강한 삶을 사는 것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값싼 고기를 생산하는 데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성장촉진제, 항생제, 방부제 같은 것으로 범벅이 된 저질 사료를 사용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가축이 그런 맹독 성분의 저질 사료를 먹고 하나님이 지으신 본성에 거슬러서 비정상적으로 성장을 해도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원한다. 고기 무게가 더 나가니까.

양계장을 보면 밀폐된 좁은 공간에 닭 수천 마리가 빽빽하게 들어 있다. 그 닭들에게는 뛰어 놀거나 날갯짓을 할 공간도 없다. 그것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머리를 내밀어서 맹독 성분의 사료를 쉬지 않고 먹는 것, 살이 찌는 것, 그리고 알을 낳는 것뿐이다. 그것들은 실제로는 알 낳는 기계이지 생명 가진 짐승이라고 볼 수 없다. 이렇게 닭을 기르는 방식을 이른바 ‘배터리 식 양계’라고 한다.

 

지난 2002년 6월 15일, 유럽연합(EU)의 15개 회원국 농업장관들은, 가축의 환경이 사람의 건강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는 점을 인식하고, 가축 환경 보호를 위한 강제 조치에 합의했다. 그들은 오는 2013년부터 배터리 식 양계를 불법화하기로 하고, 천연 사료의 이용을 장려하기로 합의했다. 이런 합의도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마침 벨기에 산 돼지고기 닭고기의 다이옥신 파동이 일어나는 바람에 전격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에 따라 EU 회원국들은 2003년부터 산란용 닭을 적어도 마리 당 750 ㎠가 넘는 닭장에서 사육해야 한다. 현재 EU 회원국의 산란용 닭장의 최소 규모는 마리 당 450 ㎠인데, 이는 1 ㎡의 공간에서 약 22마리의 닭을 기르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경우는 더 심해서 마리 당 310 ㎠(1 ㎡ 당 약 32마리)이다.* 310 ㎠는 A4용지 절반의 넓이에 해당하니 그것이 얼마나 좁은지 짐작할 만하다. EU가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관철시켰다고 하는 750 ㎠도 기껏해야 A4용지보다 조금 더 넓은 면적이다.

 

우리 나라의 사정은 미국의 경우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나을 리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 과연 고기를 얻기 위해서 닭을 기르는 것인가? 닭에 대한 학대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하나님은 인간에게 닭고기를 먹도록 허락하셨지만, 그렇게 짐승을 학대할 권한을 주시지는 않았다.


한번은 밤중에 냇가를 걷다가 이상한 불빛이 있어서 가보았더니 진기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성남 모란 시장 근처 아주 넓은 하천부지에 백 대는 되어 보이는 많은 트럭들이 전깃불 대신으로 라이틀 밝히고 있었다. 전깃불도 천막도 없는 것을 보니 임시로 개설한 시장인 듯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트럭에는 철망이 가득했고 그 철망 안에는 수십 마리의 개들이 빽빽히 들어 있었다. 그것들은 살아 있는 짐승이라기보다는 구겨서 처박아 놓은 물건들 같았다. 그것들은 자신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음을 본능으로 아는지 다들 슬프게 울었다. 그 모습이 너무 처참해서 개들을 똑바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

 

그곳을 빠져 나오면서 마치 잠시 지옥 같은 데를 다녀 온 것 같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바로 그 위 모란 시장에는 유명한 개 시장이 있는데, 누구라도 그곳에 다녀오면 다시는 개고기를 먹고 싶지 않을 것이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개 버전(version)’으로 본다고나 할까……. 도살을 기다리는 살아 있는 개들이 좁은 철망 안에 꼼짝할 틈도 없이 화물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고, 뭔가를 태운 데서 나는 역겨운 냄새가 비린내와 섞여서 난다.

 

그런 개들로 즉석에서 무슨 영양제를 만들어주는 집들도 즐비하다. 인간이 그런 것을 먹고산다는 사실이 역겹기까지 하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그런 걸 먹어야 하고 몸보신을 해야 하는 것일까. 더욱이 사람들은 개고기를 맛있게 만들려면 한껏 독을 올려야 한다면서 개를 잡을 때도 곱게 잡지 않고 각목으로 두들겨 패서 잡는다고 한다. 그러면 개는 눈에 불을 켜면서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복날 개 패듯 한다”는 속담까지 나온 것이란다. 그것도 모자라서 그것을 불에 그을려서 먹는다.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맛을 좋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개를 그렇게까지 학대하는 것은, 고기는 먹되 생명까지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성경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다.

그렇게 지옥 같은 환경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맹독성 사료를 먹고, 본성을 거슬러서 자라는, 닭의 고기와 계란이 어떻게 사람에게 이롭겠는가. 그렇게 독이 오르게 패서 잡은 개고기가 사람에게 좋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렇게 짐승을 학대하고, 그 생명이 제대로 꽃피지 못하게 하면서, 그것들로부터 맛있는 고기만 얻겠다고 하는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가.

 

과연 그들이 짐승들을 다스리는 권한을 위임받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인가. 최근에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영국의 광우병 파동, 홍콩의 조류독감 파동, 그리고 벨기에 산 돼지고기 닭고기의 다이옥신 파동 등은, 이와 같이 동물을 학대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권한을 넘어서서, 짐승의 생명까지 함부로 처분하려고 하는 인간에 대한 경고일 것이다. 그들은 짐승들을 정화기나 필터 정도로 여기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독성이 강한 사료도 짐승에게 먹이기만 하면 독성은 짐승의 체내에서 다 사라지고 고기만 남는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이옥신 같은 맹독성 물질은 짐승의 몸 속에서 조금도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서 결국은 그 고기를 먹을 때 고스란히 인간의 몸 속에 들어와 쌓이게 되어 있다. 짐승을 학대한 결과를 최종적으로 받는 이는 결국 인간 자신이 되는 것이다. 자업자득이 아니고 뭔가.

사람들을 토해내는 땅

이번의 다이옥신 파동은, 인간이 생명 있는 것들뿐만 아니라 땅을 무시하고 경시하는 데 대한 경고이다. 옛날에는 무엇이든지 땅에 묻으면 해결이 되었다. 땅은 모든 것을 받아주고 안으로 삭혀서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고 생명을 길러내 주었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땅이 도저히 안으로 삭힐 수 없는 것들, 땅의 자정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독극물을 땅에 쏟아 붓고 있다. 짐승에 대한 학대 이상으로, 땅에 대한 학대와 착취는 땅이 견딜 수 있는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는 사람들이 땅을 생명 없는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이 정복해야 할 대상 정도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세기에서 땅은 인격이 없는 무생물이나 정복의 대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꼭 인격체와 같이 인간의 죄에 대해 반응하고 또 인간과 운명을 같이 한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했을 때, 아무런 잘못도 없는 것으로 보이는 땅이 저주를 받는다. 그래서 땅은 인간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었고 얼굴에 땀을 흘리는 수고를 해야 겨우 알곡을 내게 되었다(3:17-19).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 때도 땅이 저주를 받는다. 그래서 그가 밭을 갈아도, 땅이 효력을 나타내지 않게 되었다(4:10-12). 이런 것은 땅이 인간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같이 죽고 같이 사는 관계임을 말한다. 땅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죄악이 그 수용 한도를 지나쳤을 때에는, 그들을 토해내기도 한다(레 18:24-28, 20:22).

 

요즘 다이옥신 파동을 보면서 드디어 땅이 사람들을 토해내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생명 있는 것들에 대한 책임, 관리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이 우리에게 책임을 묻기 전에 땅이 우리를 견디지 못하고 토해내는 것이다. 레위기에서 말하는, 땅이 거민을 토하게 만드는 범죄라는 것은 성범죄나 부정의 같은 문제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차원을 넘어선다. 그때는 땅이 거민을 토해내면 땅은 멀쩡했는데, 이제는 땅이 사람을 토해내도 땅은 이미 오염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옛날의 범죄는 기껏해야 사람들간의 범죄였는데, 이제는 땅을 아주 못 쓰게 만드는 범죄가 합법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다.

그러므로 땅은 태초 이후로 일찍이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처음으로 겪고 있는 셈이다. 짐승들도 일찍이 지금처럼 학대를 받으며 살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종의 탄생 이후에 처음으로 겪어보는 고난일 것이다. 식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맥락에서, ‘모든 피조물이 함께 신음하며 해산의 고통을 함께 겪는다’고 하는 바울 사도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롬 8:22). 특히 요즈음은 온 세상에 그런 신음 소리가 가득한 것 같다. 신음하는 그 피조물들에게 인간의 얼굴은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그 그림자만 비쳐도 다들 놀라서 숨게 만들 정도로, 두렵고도 무서운(창 9:2) 어떤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런 만큼 더욱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이 나타나기를 피조물은 간절히 기다릴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린다’고 했다(롬 8:19).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자녀는, 짐승들이 온전한 생명을 누리도록 다스리며, 온갖 식물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도록 잘 돌보는 사람이다. 땅이 거민들을 토해내지 않도록 보살피는 사람이다. 그것들에게 그런 하나님의 자녀는 진정 보고 싶은 얼굴일 것이다.

 

민들레성서마을

글쓴이 :    암호 :
댓글 :
LIST  MODIFY  DELETE  WRITE  REPLY 





전체글 목록 2026. 10. 09.  전체글: 260  방문수: 9080571
 공지   성경 들꽃2010.12.30.307762
80   오병이어, 도시락, 그리고 사도들의 직분 [46]  사람과 자연2009.02.24.18448
79   아, 화왕산... [6]  들꽃2009.02.11.20201
78   워낭소리 [2]  들꽃2009.02.09.19857
77   불경(신성모독 등) [3]  주님사랑2009.02.08.20112
76   퇴근길 현관앞에서 [3]  들꽃2009.01.24.20720
75   울지도 웃지도 못할 세상사 [4]  사람과 자연2008.12.27.19545
74   두번의 눈물..아름다운 주일  들꽃2008.12.14.20201
73   이런 일상 생활들 [5]  사람과 자연2008.12.05.19616
72   테레사 테레사  들꽃2008.11.06.21500
71   왕십리 고양이 [7]  사람과 자연2008.10.11.23232
70   주님 저를 죽여 주옵소서 [11]  사람과 자연2008.10.05.19995
69   지도에 없는 마을  김재성(한신대교수)2008.08.22.19728
68   육식에 대한 질문 [3]  박기호(신부)2008.07.25.20382
67   외로운 남자 [25]  사람과 자연2008.06.17.20177
66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26]  김재성(한신대교수)2008.06.12.19838
65   길들이기.... [19]  들꽃2008.06.06.20328
64   죽은 사람의 부활  김재성(한신대교수)2008.05.28.19760
63   아직은 철이없어 모르겠지만...  들꽃2008.05.16.19876
62   꽃 화분 그리고 사무실  들꽃2008.05.13.21213
61   보고 싶은 얼굴  김재성(한신대교수)2008.04.19.19521
RELOAD VIEW DEL WRITE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