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의 혼인 잔치를 고찰하면서 얻은 또 한가지

그 때 잔치집에는

예수님과 성모님 외에 제자들도 함께 초대되어 있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술이 떨어진 것을 몰랐거나, 알았어도 관심두지 않았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먹고 마시다가 음식이 떨어지면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다른 손님들처럼 주인을 흉볼 일은 없지만

애써 주인을 두둔하며 변명해 줄 필요는 없는 입장인 것이다.

그래서

성모님 말씀이 없으셨으면, 예수께선 그만 일어나 가셨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성모께서 여성 특유의 자상함으로 그 사정을 아시고 안타까워 하셨다.

간혹

잔치집 주인과 가까운 친척이라서 그리 하셨다는 주장도 있던데

그럼, 아드님이신 예수께선 남이라서 가만히 계셨다 그 말인가?

난 그리 생각하지 않으며 동의하고 싶지 않다.

무슨 근거로 그리 주장하는지도 의문일 뿐더러

친척 관계가 아니라도

그 분의 신중하시고도 사려 깊으신 말씀에서

이웃들의 불행을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 하시는 마음과

아드님에 대한 확고하신 믿음, 그리고 배려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포도주가 없구나."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요2:3~4)

이 말씀에 담긴 뜻은 실로 여러가지라 생각되는데.

우선

아드님께서 기적 능력이 있으심을 진작부터 알고 계셨다 판단되고

그리고

한번도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음을 고려하신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또

아드님께서 자신의 바램을 거부하고 싶어 하실 것이라는 예견과

하지만, 결국 들어 주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깔려 있기도 하다.

그러면 성모께서는

왜 무엇 때문에, 그렇듯 수수께끼 처럼 말씀하신 것일까?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 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요2:3~4)

두분이 나누신 내용은

성모께서 포도주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예수께서는

기적을 베풀라 하신 것으로 들으시고, 아직 때가 아니라고 답하셨다.

대화의 연결이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래서 난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연결이야 어떻든

성모님 말씀에 예수께서 그 처럼 답하셨으므로

성모님 말씀은, 예수께 기적을 베풀라 하신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바로 그 때문에

성모께서는 이전에 이미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실 능력이 있으심을 알고 계셨다고 보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그 사실을 알고 계셨음은 물론.

그러면, 두분께서 나누신 대화가 이해되고 자연스러워 진다.

잔치집 주인을 위해 기적을 바라지만 선택은 아드님이 하시라고.

그러면서도

집 주인의 낭패와 대망신을 어떻게 모른체 할 수 있느냐고.

만일, 기적을 행하지 않으셔도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문제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바램대로 기적을 행하실 것이라 믿으셨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대로 하여라"

이 말씀이 믿으셨다는 근거.

그리고, 성모께서 바라신대로 집주인은 대망신을 면했는데

예수께서

처음엔 마음에 두지 않으시다가, 성모님의 선하신 권유에 응하신 덕분이다.

짧은 그 한 마디 말씀에 이 처럼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때가 오지 않았다 하신 것은, 아직 기적 능력이 없으시다는 뜻이 아니며

당신께서 생각해 두신 때(기적 행하실 일, 또는 상황)가 아니다...란 뜻

다시 말해서

공의로운 일에 기적을 행하시고자 하셨고

잔치 중 먹다 떨어진 포도주 따위의 사사로운 일에 행하고 싶지 않으시다는.....

만일, 이러한 견해가 틀리지 않다면

성모께 전구를 드리는 것이 이해됨과 동시, 그 필요성 또한 분명해 진다.

그 경우, 성모께서는

예수께서 결정해 두신 당초 생각과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분이 되시며.

미약한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

"(아들아) 난 이 사람이 딱하고 불쌍하구나."

또는

"그 사람 본래 마음은 착한데 실수한 것 같구나"

이 처럼 우리의 허물을 감싸시며, 불쌍히 여기시고 안타까워 하실 분이다.

그럼, 당신의 마음에 드시지 않는 자격 미달이라 해도 받아 주실 것이라고...

원래, 성모께 드리는 전구의 의미가 그러한 것 아니던가?

인간은 죄의 유혹에 약하여 계속 넘어지게 마련이고

잔치집 주인 역시 인간인지라 태만하여 큰 실수를 저지른 상태였다.

당초에 그는

잔치 기간이 일주일이므로 그에 맞추어 준비를 충분히 했어야 옳았다.

그리고

손님들이 예상 보다 많았다면, 꼼꼼히 음식 점검을 했어야 마땅한 일이었다.

주인의 그것은

우매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이

구원의 길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데도 간과하여 소흘히 하고 있음과 같다.

난 이 귀절의 중요성을 이제 겨우 깨달았는데.

주인이 잔치술 떨어진 것을 몰랐듯이, 우리도 지금 자만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또, 주인이 평소 성모님과 훌륭히 친교를 가진 것은

우리가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고 있음과 비유되는 일

그 밖에도 믿음이 약하고 부실한 상황 등등이 주인의 그것과 거의 흡사하다.

결론적으로

인간들이 당신의 심판에 아무리 열심히 대비한다 하더라도

원래부터 미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이라 태만(소흘)을 피할 수 없으며.

결국, 틀림없이, 그 주인처럼 술 떨어진 상황에 처할 것이 뻔하므로.

성모께 의지하여 매달려야 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고 필요성의 근거가 된다.

우리 신자들 모두는

아니, 나는

믿음이 너무도 부실하고 허약한 때문에 성모님 말씀을 거역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것은

일부 교우들의 유별한 성모신심 같은 그러한 것은 아니다.

성모님을 최상의 예우로서 모셔야 함은 옳고 당연하지만.

그러나

그 분께 대한 예우는 피조물들 중에서 최상인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대상이

성자 하느님의 모친이신 성모님이라도 예외일 수 없다.

오직 주님께만 드려야 할 찬미와 흠숭 영광이므로

성모님으로 인하여

조금

극히, 아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당신의 영광을 훼손하거나 빛을 가리는 일이 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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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다시 쓰면 오늘 보다 나을지 모르고 또 그리 되길 바라지만

그래도 이번 혼인 잔치 순례가 더 없이 고맙고 다행인 것은

그동안 계속 의문스러워 했던 문제

즉, 성모님의 전구가 필요한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어 한결 마음이 가볍다.

솔직히

그동안 성모님 전구의 필요성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교회가 하는 일이라 따르긴 하면서도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는데.

그에 혹자들은

그저 막연히, 성모께서 전구를 해 주시면 더 낫고 좋지 않느냐....

구원의 길에 성모께 의지하면 더욱 확실하다 하는데 외면할 것이 뭐냐고.

어떤 이들은

교회가 가르치고 권장하는 성모신심에서 크게 더 나아가

구원의 필수란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제 그 주장은, 전폭적인 수용은 아니고, 이해할 수 있다로 바꾸었음)

또, 믿음에 도움 되면 취하고, 아니다 생각되면 버리란 의견도 있었지만.

그 동안은, 이도 저도 아닌 마음이어서 사뭇 찜찜해 했던 것이 사실.

그랬는데

이번 순례에서 그 이유와 필요성을 알게 되어 얼마나 개운한지 모른다.

그런데, 내가 알고 이해한 것은

성모님의 전구가 있으면 좋고 없어도 문제될 것 없는 것이 아니고

버린다는 것은 더 더욱 말이 안 되는 일

내가 바로 그런 놈이지만

우매하고 어리석기 그지 없는 녀석들에게는

없으면 안 되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