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 전후 가톨릭의 수난上

-- 근대에 들어오면서 국가주의의 발달로 그리스도교적 보편주의 정신은 점차 약화되고 전제군주의 이른바 절대주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그간 교회에 성실하던 국가가 부국강병을 위해 교회의 재산을 탐내었고 또는 교회를 이용하고자 하였으며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박해하여 야망을 채우려 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현상은 유럽의 여타국가는 말할것도 없거니와 가톨릭의 딸임을 자랑하던 프랑스마저 가톨릭에 대해 박해가 가중되었다. 즉 세속 군주들은 종교마저 국가정책의 노예로 삼기를 원했고 군비확장을 위해 막대한 교회재산을 노렸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에는 오랫동안 종교개혁으로 시달린 가톨릭으로서는 힘이 너무나 약했다. 이른바 절대 왕정하에서 신성불가침의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은 이 시대를 지배하였고 세속군주들은 교회를 국가에 예속시키려 하였다.

이러한 국가욕망에 가장 큰 장애가 된 것은 로마교황청이었다. 그래서 국가는 교황청을 극도로 괴롭혔다. 오랫동안 계속된 국가전제주의는 교회 안에 혁명운동을 일으키고 국가가 교회를 분쟁 속으로 휩쓸어갔다. 즉 프랑스는 통일국가로의 면목이 시작되는 최초의 국왕인 필립 4세(재위:1285-1314)로부터 프랑스의 대표적 전제군주인 루이 14세(재위:1643-1715)시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나폴레옹시대까지 수난이 이어졌다.

이러한 가톨릭의 수난은 절대왕정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프랑스혁명기의 이른바 공포정치하에서 성직자 공민헌장(1790)을 통한 박해를 받아야 하였고 이어 나폴레옹의 집권하에서는 정교조약(政敎條約,1801)에 의해 수난의 오랜 역정을 밟아야 했다.

프랑스 통일국가로서의 최초의 국왕인 필립 4세는 왕령통일화정책(王領統一化政策)을 실시함으로써 로마교황청과 대립하였다.

그는 국왕의 지위는 절대 독립적이며 교황권은 교회법에 구속된다고 주장하고 프랑스왕은 공의회를 프랑스에서 소집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교황사절에게 그의 직무수행을 강요하고 주교에 대하여 외국여행을 금할 수가 있고 성직자의 임명권 및 어떤 종류라도 성직자의 범죄를 국가가 처벌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세속왕권과 로마교황권과의 충돌은 영,불간의 백년전쟁(1337-1453)을 앞두고 막대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필립 4세의 교황의 허가없이 국내 성직자에 대한 과세문제로 시작되었다. 당시의 교황인 보니파시오 8세(재위:1294-1303)는 극렬히 반대하였다.

이 양자간의 격렬한 항쟁은 1296년에 시작하여 교황은 칙서(勅書)를 발하여 교회 성직자에 대해 세속권력이 자의적으로 과세함을 파문(破門)으로 맞섰다.

이에 대해 필립 4세는 보복조치를 양보하여 교황이 긴급을 요할 때는 교황의 동의없이 성직자에 과세할 것을 인정(1297)함으로써 분쟁은 일단 진정되었다. 그러나 1301년 국왕이 교황 보호하에 있는 한 주교를 체포함으로써 재연되었다. 교황은 즉시 프랑스 국왕의 제특권을 취소하고 로마교회회의를 소집하였다.

이러한 교황의 저항에 대해 국왕은 국내 성직자들의 교회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금지하고 두차례(1301,1302)에 걸쳐 전국의 성속제후(聖俗諸侯)와 평민의 3신분을 소집하여 국내 유력자들의 지지를 구하였다. 이것이 프랑스의 전국 3신분회의의 시작인 것이다.

이러한 국왕의 대처에 대해 교황은 '유일한 성스러움'이란 칙서를 발하여 세속세계, 왕권에 대한 교황권의 절대적 우위성을 주장하고 국왕폐위를 주장하였다.

이러한 항쟁중에 국왕은 1303년 교황을 로마교외의 아나그니에서 체포하기에 이르렀다. 교황은 그후 곧 석방되어 로마에 귀환하였으나 사건발생 후 한달만에 울분을 품은 채 사망하였다.

이후 국왕은 국가교회주의로 교회를 국왕하에 종속시키려 하였다. 이것이 프랑스 국가교회주의의 출현이며 통일적 권력의 단서가 형성되고 이로인해 교황권의 쇠퇴시대로 교회는 큰 전환을 맞게 되었다.

이후 국왕은 교회에 제특권을 부여함과 동시에 언제든지 취소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는 왕국의 정치생활에 개입해서는 안되며 국가에 종속해야 한다는 14세기 이래의 국왕의 적극적 교회정책이 나타났다. 동조 법률가들과 함께 마르시리오(1290-1342)가 쓴 '평화의 옹호자'에서 국왕의 교회지배의 이론적 근거를 이유로 교회를 지배하였다.

그 내용에 의하면

교회는 어떠한 강행적인 정치권력을 소유할 수가 없다.
국가는 공공의 복지를 대표함과 동시에 어느 누구도 국법에 복종해야 하며 이를 피할 수 없다.
하느님의 법은 어느 것이든 세속사회에 있어서 재판권을 갖는 것이 아니며 국가는 세속세계에 있어서 그 자체가 완전한 존재이며 자유이다.
교회는 그리스도교 신자 단체일 뿐 그 기능과 활동은 순수한 종교적, 정신적, 도덕적 영역에 한한다는 것 등이다.
이러한 이론적 무기를 가진 왕권의 공격에 교황측은 1303-1307년에 걸친 지금까지의 국왕에 대한 비난의 언사와 두차례에 걸친 칙서를 취소하고 분쟁이 수습되었다.
그러나 그후 교황청을 남불(南佛) 아비뇽으로 옮겨 국왕지배하에 이른바 '아비뇽의 유수'(1309-1377)가 시작된 것이다. 그후 로마에도 교황이 있어 교회대분열(1378-1417) 시대가 되어 15세기부터 교회의 주도권은 교황으로부터 이탈되어 피사(1409), 콘스탄즈(1414-1418), 바젤(1431-1449) 등의 공의회 및 교회회의에 장악되었다.

이러한 회의는 배후에서 세속 제권력이 작용하여 교황권은 약화되고 성직자 특히 하급 성직자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워 신자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성직자들의 성무집행(미사, 혼인, 장례 등)때 성금을 내는 풍습이 나타났다. 여기에 성직자들의 부당이득을 방지하고 적정가를 받는(강제성이 없는) 제도가 1326년 아비뇽의 교회회의에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그런데 중세말기 이러한 문제는 때때로 성직자와 평신도들간에 분쟁의 소지가 되기도 하고 때로 고등법원에까지 이어지기도 하였다.

루이 14세(재위:1643-1715)는 교회를 완전히 그의 권력하에 두었다. 파리에서 성직자회의(1681.1.10-1682.7.1)를 소집하였는데 왕의 측근 성직자들로 구성하고 왕의 뜻에 영합하는데 급급하였다.

여기에서 보슈에가 작성한 '프랑스 성직자 선언'(4개조)이 발표되었다. 중요골자는 왕권의 절대성과 교황권의 침해와 성직자회의인 프랑스 공의회가 교황권의 우위에 있다는 내용이다.

물론 이러한 선언을 교회가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1690년 교황 알렉산데르 8세(재위:1689-1691)는 이 선언을 무효라고 주장하였다. 다음 교황인 인노첸시오 12세(재위:1691-1700)는 1693년 국왕을 움직여 칙령의 실시를 단념케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루이 14세가 죽은 후 국회는 다시 칙령을 실시하고자 요구하였다. 그후 나폴레옹 1세가 다시 일으켰으며 이것을 철저하게 배척할 수 있었던 것은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였다. 실로 종교개혁 시대에 못지않은 시련을 겪어야 했고, 용감한 항쟁도 계속되었으나 고난의 역정은 비오 6세(재위:1775-1799)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교황들은 악전고투를 거듭하였다.

참으로 참기 어려운 양보와 갖가지 상처를 감수하면서 본연의 교황직에 충실코자 하였다. 비오 6세는 프랑스혁명으로 그러한 전제군주들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기는 하였으나 이른바 공포정치하에서 또한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새로운 교회의 수난을 겪어야 했다.(다음호에 설명)

가톨릭은 이상과 같은 전제군주들과의 항쟁의 시련도 컸지만 교회내부 학설의 대립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즉 이른바 얀세니즘과 갈리아주의의 이단적 종교학설이다.

전자는 벨지움의 이프로 주교인 얀세니우스가 그의 저서 '아우구스티누스'에서 주장한 이단적 학설이며, 후자는 보슈에가 기초한 '성직자 선언'에 집약된 것으로 가톨릭의 신앙을 지키면서 교황권과 세속권을 명확히 구별하여 프랑스교회의 독립적 입장을 주장한 것으로 교회는 현세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아무런 권능도 없다는 이단적 학설이다.

그밖에 또한 반종교적 온상이 된 프랑스의 백과전서파와 이른바 자유주의 사상가들이 있다. 이러한 교회의 이단설에 대해 예수회의 분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해산을 강요당했다. 뿐만 아니라 유리주의(唯理主義, Rationalism)사상이 교회를 더욱 괴롭혔다.

이들은 이성(理性)만이 바른 인식의 원천이고 하느님의 계시는 결코 이러한 인식원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교회는 종교개혁이래 프로테스탄트만이 아니라 전제군주 그리고 내부의 학설논쟁 등으로 때로는 정통신앙의 경계를 넘어 교회의 평화를 깨뜨리고 위신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16세기 이단자들은 거의 인간의 자유를 부정하고 인간이란 하느님의 성총의 지배를 받는 허수아비같은 의지없는 존재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칼빈의 구원예정설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가톨릭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성총과의 관계를 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트리엔트공의회는 성총의 영향아래 있는 인간의 의지는 항상 자유롭다고 정의를 내렸다.

참으로 교회는 종교개혁이래 프랑스혁명 전후를 비롯하여 나폴레옹의 집권에 이르기까지 계속 수난의 역정을 겪어야 했다. 수난의 기간치고는 너무나 오래 지속되었다. 오늘의 교회는 모두 이들이 닦고 쌓은 순교정신의 결과이다.

조경래(前상명대 대학원장, 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