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화론(義化論)

의화의 과정

I. 의화의 개념 (The Concept of Justification)

(1) 프로테스탄트 개혁자들이 가졌던 의화의 개념

루터의 의화론의 시발점(始發点)은 인간의 본성이 아담의 죄로 인하여 완전히 부패했다는 확신이었으며, 원죄를 악한 욕정과 동일시하는 것이었다.

루터는 의화란 죄인이 내적으로 계속해서 불의하며 죄를 지닌 채로 남아 있지만, 하느님께서 그를 의화된 것으로 간주해 주시는 하나의 법적인 행위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의화는 참으로 죄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죄를 묻지 않는 것, 즉 죄를 덮어줌이라는 것이다; 의화는 내적인 쇄신과 성화가 아니며, 단지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이 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의화를 위하여 주관적으로 필요한 조건은 의탁하는 신앙(fiducial faith)이며, 이는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하여 자신의 죄를 용서하여 주심으로써 자신이 확실하게 구원될 것임을 믿는다는 뜻이다.

(2) 올바른 의화의 개념

트렌트 공의회에서는 골로사이서 1장 13절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의화를 정의하였다:

첫 번째의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난 상태로부터 두 번째의 아담이신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양자녀로서 받아들여져서 은총 지위에로 옮겨가는 것을 말한다 (DS #1524).

의화는 죄를 진정으로 제거함을 말하며, 내적으로 인간을 초자연적으로 성화하며 쇄신함을 말한다 (DS #1528).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이 단지 외적으로 적용된다고 하는 개혁자들의 가르침은 트렌트 공의회에서 이단설로 배격되었다 (DS #1515, 1561).

성서 상으로는, 죄의 사함이 죄에 대한 진정하고도 완전한 제거를 의미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표현들이 사용된 것을 보아도 분명하다: "씻어 버린다," "제거한다" (시편 50:3; 이사야 43:25; 44:22; 사도행전 3:19), "치워 버린다" (사무엘 후 12:13; 요한 1:29), "정화한다" (시편 50:4; 이사야 1:16; 에즈키엘 36:25; 사도행전 22:16; 고린토 전 6:11; 히브리서 1:3), "면제한다" (시편 31:1; 84:3; 마태오 9:2, 6; 루까 7:47; 요한 20:23; 마태오 26:28; 에페소 1:7). 성서에서 "죄를 덮는다," "죄를 묻지 않는다,"라는 표현들이 사용된 것은 (시편 31:1, 84:3; 고린토 후 5:19) "죄를 사한다,"라는 표현이 함께 쓰여진 (시편 31:1, 84:3)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애덕이 모든 죄를 덮는다" (잠언 10:12), "애덕이 수많은 죄를 덮는다" (베드로 전 4:8)라는 표현에서는 하느님께서 죄를 용서하여 주신다 함에 대하여 의문의 여지가 없다. 단, 인간들 사이에서도 상호 간의 용서가 있어야 함이 강조되고 있다.

성서에서는 또한 의화를 하느님께 의하여 "다시 태어남"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이는 죄인이던 이가 새로운, 초자연적인 생명을 받음(요한 3:5, 티모데오 3:5), 새로이 창조됨(고린토 후 5:17, 갈라디아 6:15), 내적으로 쇄신됨(에페소 4:23), 성화 (고린토 전 6:11), 죽음의 상태로부터 생명의 상태로 옮아감(골로사이 1:13; 에페소 5:8),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영구적인 일치를 이룸(요한 14:23; 15:5),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함(베드로 후 1:4)을 뜻한다. 성 바오로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로움이 되셨다고 말하는 것은 (고린토 전 1:30; 로마 5:18), 그분께서 우리 의화를 위한 공로를 세우셨다 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교부들은 죄의 사함을 죄에 대한 진정한 제거라고 이해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성세가 죄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 어느 정도 "깎아낼 뿐 (merely whittles them away)"이라고 하는 펠라지우스(Pelagius)의 주장을 배격하였다.

 

교부들은 의화에서 이루어지는 성화에 대하여 자주 "신성화(神聖化, deification)"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성 바오로가 하느님의 의로우심(iustitia Dei)라는 개념을 쓴 것은 하느님 자신께서 그 정의에 의해서 의로우시다라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정의를 뜻한다고 설명하였다. 그 정의가 하느님께 의해서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하느님의 정의," 즉 "하느님의 의로우심"이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죄인이 사실 상으로는 아직 죄를 지니고 있는데, 그가 의롭게 되었다고 하느님께서 선언하신다는 것은 하느님의 진실성과 거룩하심에 부합되지 않는다.

II. 의화의 원인들 (The Causes of Justification)

트렌트 공의회에서는 의화의 원인들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DS #1529).

(1) 목적이 되는 원인(目的因, causa finalis)은 1차적으로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영광이며, 2차적으로 인간들의 영원한 생명이다.

(2) 의화가 일어나게 하는 원인(動因, causa efficiens)은 하느님의 자비로우심이다.

(3) 공로가 되는 원인(causa meritoria)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가 되셔서 우리를 위하여 보속하시고 우리가 의화될 수 있는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공로를 세워 주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4) 첫 번째 의화의 수단이 되는 원인(causa instrumentalis)은 성세 성사이다. 공의회에서는 또한 성인(成人)에게는 신앙이 의화를 위한 필요 조건임을 정의하였다.

(5) 형상인(形相因, causa formalis)은 하느님의 정의이다. 이는 하느님 자신께서 그에 의해서 의로우신 정의가 아니라, 우리를 의롭게 해주시는 정의를 말한다. 즉, 이는 성화 은총이다.

트렌트 공의회의 가르침에 의하면,

성화 은총은 의화를 위한 유일한 형상인(unica formalis causa)이다. 이는 성화 은총이 영혼에 주입됨으로써 죄가 제거되며, 내적인 성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가르침으로써, 공의회는 일부 개혁자들(칼빈, 루터, 부쩌(Butzer))이 주장했던 이중 의화설(二重義化說), 즉 죄의 사함은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이 적용됨으로써 성취되지만, 성화는 영혼 안에 내재하는 의로움에 의한 것이라는 설을 배격하였다.

성서의 가르침에 의하면, 은총과 죄는 서로 완전히 반대되는 것으로서, 빛과 암흑, 그리고 생명과 죽음의 관계에 비유될 수 있다. 그렇기 ？문에 은총이 주어지면, 필연적으로 죄는 제거된다.

"의로움과 의롭지 못함이 무슨 상관이 있으며, 빛이 어두움과 무슨 사귐이 있습니까?" (고린토 후 6:14).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죄로 인하여, 그리고 몸에 할례를 받지 않아서 죽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분과 함께 살리셨습니다" (골로사이 2:13).

III. 의화를 위한 준비 (The Preparation for Justification)

(1) 준비의 가능성과 필요성

죄인은 그가 의화되기 위한 은총을 받기 위하여 조력 은총의 도움을 받아서 자신을 준비할 수 있고 또 준비해야 한다 (The sinner can and must prepare himself by the help of actual grace for the reception of the grace by which he is justified). (De fide).

프로테스탄트 개혁자들은 의화를 위한 준비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부인하였다.

이는 그들이 아담의 죄로 인하여 인간 본성이 완전한 부패하여 어떤 종류의 선도 행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인간에게 자유 의지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하여 트렌트 공의회에서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만일 누가 믿음에 의해서만 죄인이 의화되며, 따라서 의화의 은총을 받기 위하여 아무런 다른 협력도 필요하지 않으며,

죄인 자신의 의지에 의한 행동으로써 준비하거나 마음이 내키게 할 필요가 전혀 없다라고 말한다면, 저주받을지어다" (DS #1559).

성서 상의 증거를 위하여 공의회에서는 자카리아 1장 3절을 인용한다: "나에게로 향하여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로 향하리라." 이는 하느님께로 향함에 있어서 우리 의지의 자유로움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 밖에도 신, 구약 성서에는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라는 말씀이 수없이 기록되어 있다.

초대 교회 시대에는 예비자들이 의화의 은총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대단히 강도높은 준비를 시켰음을 알 수 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가르쳤다: "그대 없이 그대를 창조하신 분께서는 그대 없이 그대를 의화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그대의 동의없이 그대를 창조하셨지만, 오직 그대의 동의와 그대의 자유 의지에 의한 협력이 있어야만 그대를 의화하신다 (He who has created thee without thyself, does not justify thee without thyself. Thus, He created thee without thy knowledge, but only with thy agreement and thy will does He justify thee)." (Sermo 168, II, 13).

(2) 신앙과 의화 (Faith and Justification)

성인(成人)의 의화는 신앙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The justification of an adult is not possible without Faith). (De fide)

트렌트 공의회의 가르침에 의하면, 신앙은 "인간의 구원의 시작이며, 모든 의로움의 토대요 뿌리이다." (DS #1532)

의화를 위하여 필요한 신앙의 내용에 대해서는, 소위 신뢰적인 신앙(the fiducial faith)은 충분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신학적, 즉 교리적인 신앙(Theological or Dogmatic Faith)이다.

교리적인 신앙은 계시하시는 하느님의 권위에 의지해서, 계시된 신적 진리들을 확고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트렌트 공의회는 선언한다:

"누구든지 의화를 이루는 신앙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를 면제해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뢰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면, 또는 우리가 의화되는 것은 오로지 이러한 신뢰에 의해서라고 말한다면 저주받을지어다" (DS #1562).

 

(제 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신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인간은 그의 창조주이시며 주님이신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존되어 있으며, 또한 창조된 이성이 창조되지 않은 이성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신앙에 의해서,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이성과 의지의 완전한 복종을 드려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에서는 '인간 구원의 시작인' 이러한 신앙이 초자연적인 덕이며, 그 덕에 의해서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의 도우심과 영감에 의해서 그분께서 계시하신 것들이 진실임을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계시 진리들의 내용을 우리 이성의 자연적 빛에 의해서 깨닫기 때문이 아니라, 그 진리들을 계시하시는, 속이실 수도 없으시고 속으실 수도 없으신 하느님 자신의 권위에 의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 바오로 사도가 증거하듯이, '신앙은 희망되는 것들의 실체(즉, 알맹이)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1:1).'" (DS #3008)

성서 안에서의 증언에 의하면, 신앙, 즉 교리적인 신앙은 영원한 구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불가결의 필요 조건이다.

"모든 이에게 복음을 설교하여라. 믿고 세를 받는 자는 구원될 것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단죄받을 것이다" (마르꼬 16:16). "(이 편지들을) 쓰는 것은 여러분들이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을 믿음으로써, 여러분은 그분의 이름 안에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11:6). "신앙 없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느님께로 오는 이는 그분께서 계심과 그분께서는 그분을 찾는 이들을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요한 3:14; 8:24; 11:26 참조).

이 가르침을 반대하여 신뢰를 강조하는 이들이 인용하는 구절들은 (로마서 4:3; 마태오 9:2, 루까 17:19; 히브리서 11:1) 교리적 신앙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뢰는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에 대한 신앙으로부터 필연적으로 결과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화를 위하여 교리적 신앙이 필요함에 대한 교부들의 증언은 예비신자들에게 크리스챤 신앙의 진리들을 가르쳤고, 성세 성사를 받기 전에 신앙의 고백을 하도록 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터틀리언은 성세가 성세를 받기 전에 배워서 알던 신앙을 봉인(封印)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영원한 생명이 속해 있는 선한 생활의 시작은 참된 신앙이다,"라고 하였다 (Sermo 43, I, I).

(3) 신앙 이외에 필요한 의향의 행위들

신앙 외에도, 추가적인 의향의 행위들이 현존해야 한다 (Besides faith, further acts of disposition must be present). (De fide)

프로테스탄트 개혁자들의 가르침에 의하면, 신뢰적인 신앙이 의화에 대한 유일한 원인이다.

이 가르침에 대항하여, 트렌트 공의회는, 신앙 뿐 아니라, 다른 의향의 행위들도 필요하다고 선언하였다.

즉, 하느님의 정의에 대한 두려움;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한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희망;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시작됨; 죄를 혐오하는 마음; 성세를 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결심 등이다.

 

공의회에서는 의화의 과정에서 가지게 되는 정상적인 심리 현상들을 묘사하였다. 물론, 그 모든 행위들이 모두 존재해야 한다거나, 그 행위들만이 전부라고 하는 뜻은 아니다.

구원의 시작이 되는 신앙이 절대로 결핍되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지은 죄들에 대한 통회 역시 결코 결핍되어서는 안된다. 죄에 대한 내적인 혐오감이 없이는 용서가 가능하지 않다 (DS #1526).

성서는 신앙과 더불어서 다른 준비의 행위들, 예를 들면, 하느님을 두려워 함(전도서 1:27), 희망(전도서 2:9), 하느님을 사랑함(루까 7:27), 그리고 통회와 보속(에즈키엘 18:30; 33:11; 마태오 4:17; 사도행전 2:38: 3:19)을 요구하고 있다.

성 바오로가 우리의 구원은 신앙에 의해서이며 율법을 행함에 의해서가 아니라고 가르쳤을 때,
그는 그 신앙이 살아있는 신앙, 즉 사랑을 실천하는 활동적인 신앙이라고 이해하였다.

그리고, 율법의 행함이란, 구약 시대의 율법을 지키는 행위들, 예를 들면, 할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성 야고보는 우리가 행함에 의해서 의화되며 신앙만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다 (야고보 2:24). 여기에서 그가 말하는 신앙이란 죽은 신앙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행함이란 크리스챤 신앙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착한 행위들을 말한다. 성 바오로는 구약 율법의 실천을 강조하던 유대인들을 책망하였다. 이 두 분의 사도들이 살아있는 신앙을 요구함에 있어서 의견이 일치되어 있다.

초대 교회 시대의 예비자 교육 과정에서 가르쳐졌듯이, 교부들은 신앙만으로는 의화를 위하여 충분하지 않다고 가르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사랑없이 신앙이 존재할 수 있으나,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라고 하였다 (De Trin. XV 18, 32).

"가톨릭 교회 교리서 156-165 및 1987-2029 항 참조"

저자 : 루드비히 오트 교수 (Dr. Ludwig Ott)
원저명 : Grundriss der Katholischen Dogmatik Verlag Herder, Freiburg, Germany, 1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