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왔더니 굿뉴스 게시판에 또 사단이 일어난 모양이군요.  디씨인사이드의 종교 갤러시에서, 스스로를 감리교 신학생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결국 모든 문제는 기독론(그리스도론)으로 귀결된다."

 

스스로 예수님을 어떤 존재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신앙양식이 달라진다는 말이었지요. 상당히 추상적이지만 그 영향력이 크다는 데에는 저 또한 무척 공감합니다.

 

 

제가 아래 썼던 글에서처럼,  저 나름대로 신앙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넘어서긴 했지만 다른 문제가 또 있었지요. 하느님께 영적인 보호를 구하는 의미에서 성물에 집착했습니다. 제가 가진 성물의 대다수가 이 무렵 산 것이지요.  물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똑같은 성물을 여러 개 살 수는 없지만,  성물방 같은 데 가면 '뭐가 있으면 좋을까' 하고 눈으로나마 만족하기를 멈추지 못했습니다.  이때 기적의 패와 분도패, 목걸이 십자가를 샀지요.

 

또한 비슷한 의미에서 전대사라든가, 기타 은총이 약속되었다는 사적 신심에도 빠졌습니다. 교회가 공인한 신심 외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저는 특히 파우스티나 성녀가 전파한 '하느님 자비의 신심'에 기울었지요.

 

 

요컨데,  저는 기복신앙의 일종에 깊이 들어갔습니다. 그것도 바라는 바가 굉장히 추상적인 기복신앙이지요.  '영적인 보호' 같은 것을요.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가 쓴 '묵주기도의 비밀'이 제 성모신심에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때는 아직 전례에 대한 이해도 (지금과 비교하면) 많이 부족했지요.  가톨릭 교리서 표준판 번역본이 있어서 한 번은 정독하고, 그 외에도 필요한 부분을 읽곤 했지만, 이때는 아직 총제적인 주관이 없었으며....  제 감성적인 부분을 많이 따라갔지요.

 

(전례에 대한 이해는 제 구체적인 신앙행태에 굉장한 영향을 미쳤습니다만...그건 잠시 뒤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주교회의 게시판에서 장xx와 '성모 마리아 공동구속자'를 두고 싸울 때, 성모신심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개신교단이 하는 말이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지요.  저는 어려서부터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가 쓴 '묵주기도의 비밀'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성모신심 자체는 꽤 강한 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 자신의 성모신심과, 교회 내의 성모신심 자체를 두고 고민했지요.

 

 

 

 

인터넷으로 알게 된 어느 성공회 신자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정말로 신앙에 회의가 생기면 기도원에 들어가지 않고 신학을 공부한다"

 

참 뼈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직접적으로 신학을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사제 겸 교의신학자인 분께 조언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신학자로서 명망 높은 분이지만... 제 개인적인 이야기에 아무리 좋은 의미에서라도 본명을 거론하는 것은 피하고자 이름을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공동구속자론 자체에 대한 것, 이로 인해 촉발된 성모님 관련 4대 교리에 대한 고민,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신도로서 성모 신심을 어떻게 가지면 좋을지... 현대 교회의 가르침에 따른 개인적 지침을 구했지요.  

 

그분은 저에게 공동구속자론을 설명해주고,  본인을 비롯하여 현 교황님을 포함한 여러 신학자들이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는 말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성모신심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대략적으로 설명해주시면서,  그러한 과격한 성모신심 추종자들과 겨루면 마음에 상처를 입을 터인즉 피하는 편이 본인의 신앙을 위해서라도 좋을 것이라고 하셨지요.

 

 

성모신심은 그리스도론의 변화와 연관되어 촛점이 여러 가지로 변해왔더군요. 

 

 

 

이 답변 이후에는 책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엉뚱하게 인문학 서적에서도 도움을 받았는데요,  우리나라에 '성인숭배'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책이 한 권 있습니다.  서방교회의 성인공경신심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한 책입니다. 성인신심에 대하여 로마에 있던 '후원자 제도'가 종교적으로 변영된 것이라고 하더군요.

 

원래 로마인들은 시신을 부정한 것으로 여겨,  죽은 자와 접촉하면 정화를 하지 않고서는 신전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배교자'란 이름을 얻은 로마의 율리아누스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성인의 유해에 즐겨 접촉한 뒤 그대로 성당에 들어가니 이 무슨 해괴한 짓거리냐고 했다는군요. 

 

옛 로마에서는 후원자와 피후원자간 관계가 매우 돈독해서,  한 번 이 관계로 엮이면 후원자는 피후원자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되,  피후원자는 후원자에 대해 의리를 지켜야 했다고 합니다.   

 

성인신심에 대하여,  이러한 로마의 후원자 제도의 이미지가 그대로 투영된 것 같다고 했지요.  성인이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개인적 후원자가 되어주길 바랐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후원자는  당연히 명망 높고 힘 있는 사람일수록 좋은 법.... 그러면 성인 중에서 성모님이 인기가 높아지는 것도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초기 로마에서는 성모님 말고도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성인에 대해서 열광한 신자들에 대한 기록이 있더군요.  성당 밑에 시신을 안치하는 관습이 여기에서 유래했더군요.

 

 

전례에 대해 알아가면서, 저는 초대교회의 전례적 원칙이 '성령 안에서, 성자를 통하여 성부께' 기도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영광송조차도 아리우스 이단과 맞서기 전에는

 

"성령 안에서 성자를 통하여 성부께서는"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더군요.

그런데 이단들이 저 구절을 두고 3위 모두가 온전한 하느님이 아니라,  성자와 성령은 성부와 동등하지 않다는 구절로 파악하면서 여기에 맞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라고 병렬적으로 3위를 언급하게 됐더군요.

 

 

이러한 3위일체론, 아니, 그리스도론에 대한 이단에 맞서 성자(그리고 성령)꼐서 성부와 완전히 동등하신 하느님이심을 강조하다보니,

 

초대교회에서는 강하게 인식되었던 '그리스도께서 성부와 인간 사이 중재자'라는 이미지가 사라지고,  성부와 마찬가지로 성자를 심판자로 여기는 이미지가 강해졌으며....

 

이러한 이미지에 따라 하느님을 '무서워하고 어려워하기만 하는' 신심이 강해지고, 좀 더 친근한 중개자, 후원자로 성인신심이 대폭 강해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성모신심이 말이지요.  흑사병을 '하느님께서 내리신 심판'으로 여기면서 '하느님을 무서워하고 어려워하는' 이미지는 더욱 강력해졌고요.

 

원래 전례력은 대림절부터 시작하여 연중 마지막 주일에 이르기까지, 하느님 구속 사업의 역사를 되짚어가며 부활을 기념하고, 재림을 기다리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갈수록 성인 축일로 전례력이 범범이 되어 본연의 의미가 퇴색하고... 전례상에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성무일도가 너무 과중해진 문제도 있어,  사람들이 전례력 흐름에 따른 성무일도를 하지 않고 성인축일 성무일도만 하게 됐다는군요.  이런 문제를 타파하고자 성인 축일을 줄여도, 세월이 지나면 새로운 성인 축일로 다시..........

 

 

이러한 문제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친 게 1970년 전례개혁이었지요.  초대교회의 전례적 원칙을 이 시대에 맞게 되살리려고 애쓴 것이었습니다.

 

 

 

 

<성령 안에서 성자를 통하여 성부께>

이것이 초대교회의 전례를 관통하는 기본개념이라는 것을 알고, 성인공경신심이 초대교회에 없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과는 또 다르다는 것을 알고는, 저는 제 신앙형태를 그에 맞추어 바꾸기로 했지요.

 

일상적인 기도조차,  성자를 통하여 성부께 하는 기도를 했지요. 

두려운 하느님이라는 이미지와,  자애로운 하느님이란 이미지 사이에서 중용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성무일도를 바치려고 했습니다.  (매일같이 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성무일도를 합니다)

 

이렇게 전례 자체에 집중하면서 사적 신심이나, 성인공경신심, 성물에 대한 집착이 약해지더군요.

 

 

중재자이신 예수님을 의식하면서 성인공경신심에 대한 열정이 예전보다 약해지고,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하게 됐지요.

성무일도를 바치면서 사적 신심보다 성무일도를 우선시했기 때문에 사적 신심에 대한 마음도 약해졌습니다.

성무일도를 함으로써 전체교회와 함께 기도한다는 것이 좀 더 공동체적인 감정을 불어넣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