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취의(斷章取義);
문장의 일부를 끊어서 작자의 본의에 구애하지 않고 제멋대로 사용하는 일.

사람과 자연에 첫 발걸음한
제가 조정제님외 많은 대가들 앞에서 이런 문자를 쓴다는 것은
그야말로
공자님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겠지요?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일이며

귀신 앞에서 머리푸는 일이고

폭포 앞에서 오줌발 자랑하기요,
피라미드 안에서 집안제사 지내는 격 (성석제 소설에서 배운 것)
이라고 하겠지만요…..

오랜만에 고전 공부를 좀 하려다가
단장취의 (斷章取義t) 라는 조금은 무서운 이 말을 만나게 되자
요새 며칠간은 상당히 오래 이 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머리 속에서 [의] 라는 글자를
意가 아니고 義라고 쓴 것에 대해서 되새겨 보면서
짜장면을 먹으러 어느 중국집에 들어갔는데,

입구의 대형 거울에 이런 말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 하리라.

성경을 보지 않으시는 분들도
어디 가게나 개업하는 집에 가면 (심지어 미국교포 사회에서)
이 개신교 성경구절이 쓰여 있는 것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아예 표구를 하여 상품으로 파는 것들이 많이 있더군요.
개업하는 사람에게 해 주기에
이렇게 그럴듯한 말도 흔치 않겠지요?

중국집의 그 큰 거울을 보니 당장에
한마디 배운 단장취의가 생각 나면서
쿡하고 웃음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무슨 교회, 누구 목사하는 이름까지
큼지막하게 새겨서 거울을 벽하나 다 차지하게
모셔 두었으니 말입니다.

보통 사람이 그런 말을 썼다면
좋은 마음에서 그야말로 단장취의를 했다고
생각하고 넘기면 그만 이겠지만,
목사님의 이름으로 그걸 붙여 놓은 것은
나는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은 목사요 하고
광고하는 것 뿐이 되지 않겠지요.

원래 욥기에 나오는 이 구절은
욥의 친구 빌닷이
무엇이던지 간에 욥과 그 자녀들이
죄를 지었기에 그런 심한 고난을 받는 것이라고
공의에 대해 장장 연설을 하는 장면으로 나옵니다.
그러면서 잔소리 끝에 마음에도 없이
한마디 붙여 준 것이 그 유명한
시작은 ~~하였으나
나중은 ~~ 되리라는 그 말이지요.

가톨릭 성경으로는

자네의 시작은 보잘것없었지만

자네의 앞날은 크게 번창 할 것이네. 욥8,7
그런데 나중에는 그 말이 공교롭게도
욥에게 사실이 되어 나타나게 되지만 말입니다.

우리가 만일 성경에서 무슨 말을 인용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 이어야 할 터인데
이것은 한 사람, 그것도 제대로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욥의 친구의 장황한 사설(담론) 중에 나오는 말이라
그 모양새가 근사하다 하여 막 쓰기에는
조금 껄끄러운 장면이 아닌가 하고 생각이 됩니다.
(이런 성경 이야기를 하다니 과연 귀신 앞에서 머리풀고있습니다.)

그래서 짜장면을 먹으면서
한번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내가 함부로 남의 말을 잘라 쓴 적은 얼마나 많던가?
또 그도 모자라서
남의 말에 대해 말꼬리를 잡아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고 오해하던 일은
없었던가? 하고 말입니다.

욥기 속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는 것처럼
그래도 악의가 아닌 선의로
단장취의 하는 경우는 그 해가 덜하다고 하겠지만,
만일에
타인에 대한 불이해와 몰이해 그리고 미움과 편견 때문에
더더욱 단장취의하여
목청을 높이게 되는 일이 있다면
그야말로 듣거나 말하는 사람 서로간에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겠지요.
아니면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는 편이 맞는 말일까요?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답장을 기다리는 것처럼,
시간을 두고 생각하고 배려하고 말하고
기다리는 동안 다시 한번 마음을 정리하는
그런 일들이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되어버린 이 시대,

이 무지막지한 초고속 통신 시대에
그 빠른 속도감과 판단으로 인해 발생하기 쉽고,
감정과 정감을 제대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는
기계를 통해 말하다가
감정에 오류가 발생하는 언어의 불이해들이
참으로 많이
우리 주위에 도사리면서
실수를 하게 만들고
때론 마음 다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말만 가려 들으려고 마음을 닦는 것,
좋은 말만 입밖에 내려고 노력하는 것,
그리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 말이라는 것을
참으로 사람답게 하기 위하여
근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과 존엄성을 갖는 것이
단장취의의 우를 범하는 것을
조금이나마 막아 보는 길이 아닐까 하고
마음속에 다짐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