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허~ ! 왠 갈삐가 이리두 자주 온데여?"

 

가을 비!

가알 삐...

갈삐.......(실은 비와 삐의 중간이 정확)

 

"그야.... 가야 할 사람이 앙 가니께루.. 빨리 가라구 그러는 게지 뭐."

"가야 할 사람? 그기 뉜데?"

"뉘긴? 바루 우리지? 살만큼 산 늙은이들 아니것어?

 앙 가구 밍그적 밍그적 항께루... 채근하는 거루 봐야지."

 

"흠! 그렁가....."

"어른들이 그랬잖어...어른들 말 틀리는 거 봤어?"

"그렇긴 헌디...갈 땐 가더라두, 다 된 농사 맛은 보구 가야 할 꺼 아녀?"

"젠장...욕심은...그기 그거지 무슨? 올해라구 맛이 다르것어?

 해마다 먹었으믄서 그러는 건 뭐여....솔직히 가기 싫다구 허지"

 

"흐흐...뭐...꼭 그렁 건 아녀.... 근디 언눔이 가라구 하는 겨? 귀신잉가?"

"그건, 하늘이 하는 일이지, 해서... 그걸 천리(天理)라 하는 건디...

 하늘이 말을 하나? 알아서 새겨 들을 밖에...."

"갈삐가 그런 뜻이라....그렇것지...! 그럼, 가야지, 아암, 가야하구 말구....

 용케두 많이 살았어... 내 나이 다 살구, 시방 남 나이 사는 거 아닝가벼."

 

"남 나이는 좋은 게 아녀, 쪼매 더 있으믄, 눈 오구 땅이 얼거들랑....!

 땅 얼기 전에 가능게 좋은 거지.....언땅 파구 들어가 봐, 올매나 추울까...."

"그야 뭐.... 근디 그기 어디 맘대루 되는 일이냐 말여...."

"왜 안 되여? 지금 당장....저 담뼉에 서서 갈삐 한나절만 맞아 보라구?

 금방이랑께? 저 감나무는 왼종일 맞았응께루.. 곧 색깔이 갈 껄....!"

 

"뭐여? 사람두 비 맞으믄 낙엽된다여?"

"아무 비나 다는 아니구, 이즘 처럼, 갈에 오는 차가운 갈삐라야지.

 초목군생들이 죄다 그런 걸....해서 갈에 오는 비를 갈삐라 하는 게여."

"........"

 

오늘처럼

갈삐 내리던 내 어릴 적 어느날

바쁜 수확철에, 궂은 날씨 걱정 끝에 이어진 노인들 한담 내용이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났고

세월은 정직하여, 이제 내가 그 노인이 되었는데..

 

당시 그 노인들은

회갑이 갓 지났지 않았나...? 란 기억이다.

그 분들은 천리를 절대 존중?하여, 회갑까지만 자신의 나이라 하고

그 이상은 덤으로 사는 남의 나이라면서, 고맙게 생각했었다.

오늘 두 노인의 그 마음이, 왜 이토록 아리게 다가 오는 것일까......

 

그리고

생각하면 할수록 기막힌 것이.

감나무 처럼 담벽에 서 있으면서, 한나절만 갈삐를 맞아 보라고....!

그럼, 사람도 낙엽처럼 시들어 곧 죽는다는 것이었다.

초목군생들이 하듯이, 인간도 그리 해야 하는 것을

그렇게 못하고 천리를 거스름을, 얼마간 미안해 하지 않았던가?

 

또

덤으로 사는 삶이라면서

아무 때 죽어도, 아까울 것 억울할 것 하나도 없노라고.....

마치

삶을 초월한, 도통한 사람같이 말했었다.

그 땐 농담으로 들었지만, 어쩜 진심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나도 이제부턴 덤 인생!

그렇다면 두 노인들 처럼, 담담하게 죽음을 말할 수 있는가?

새삼 주위를 둘러 보니

이번 갈삐에 시들어 버린 정원의 꽃들이 그랬다.

그리고, 길가의 풀들도

한 두잎씩 잎을 떨어뜨리는 가로수들도..... 

 

그 뿐인가?

얼마 전까지 바쁘게 날던 나비도, 잠자리도.

이름 모를 여러 철새들도...

그 모두가, 갈삐가 가라 하고 있건만, 마냥 담담한 모습들이다.

 

그런데, 나는

갈삐를 피해, 처마 끝 낙수를 바라 보면서

아직은 아니라며, 애써 담담한 척 가장하는 한심한 오늘이지만.

그러나

천리 역행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진심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