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오랜 옛날  

늦가을 오솔길을 걸을 때

낙엽 소리를 들으며 그대가 한 말이 기억납니다.

 

가을은

외롭고 쓸쓸하여 슬픈 계절이라고

낙엽들이 바스락 비명지르며 우는 소리를 들으면

왠지 울고 싶어진다고

어느 시인도 말했지만

가을은 헤어짐이 연상되어 슬프다고..... 

 

그땐 젊었었는데

어느듯

그대도 나도

생의 가을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문득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그 때 그 오솔길을 걷는다면

그 낙엽들을 밟는다면

그대는 어떤 말을 할까요?

그 때처럼 변하지 않았을까요?

 

당시 그대가 그 말을 했을 때

난 그냥 웃었지만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아닐지 모른다고.

가을의 진정한 의미는 그것이 아닐 것이라고.

 

무엇인지 몰라도

왠지 그대의 말에 동감할 수 없었지요.

그랬었는데

이제 겨우 그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데 참 오래 걸렸지만 말입니다.

 

가을의 의미

낙엽의 비명소리

가랑잎들이 아우성치는 그 의미는

그 때 그대가 말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길가에 수북히 쌓여

찬 바람에 바스스 떨던 그 소리들은

발길에 밟히며 절규하던 그들의 울음소리는

생을 다한 떠남의 슬픔이 아닌 것입니다.

 

그건

후희 없이 생을 마감한

그들 특유의 기쁨과 희열에 찬 노래 입니다.

다시 잘 들어 보세요.

그들은 슬퍼할 이유가 하나도 없지요.

 

지나간 한 해 무서웠던 태풍

생존을 위협했던 폭우들이 한 두번이었던가요?

극심한 가뭄과 심술궂은 장마

결국

버티지 못하고

뿌리 뽑히고 가지가 부러진 이웃들이 많았지만.

 

그런데도 그들은

그것들을 능히 이겨냈고

온갖 고통속에서 총실한 열매들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생의 목표를 달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 편히 떠날 준비를 합니다.

떠나기 전에 잠시 쉬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마음도 가벼울 것입니다.

그들에겐 미련과 아쉬움 같은 건 없으니까요.

 

그래서

엉터리 생을 사는 잘난 인간들은

그들에게 배워야 합니다.

한번 그들의 소리를 잘 들어 보세요.

 

그 때의 가랑잎 소리는

그대와 나에게 들려 준 한숨이었고

탄식이며

연민의 충고였음을 알 것입니다.

떠남을 서러워 한 울음이 아니었지요.

 

가을은

우리가 몰랐던 것들을

소흘히 했던 소중한 것을 알게 해 줍니다.

 

조금 시간을 내어

다시 그 오솔길을 걸으면서

올 가을에

한번 더 그들의 소리를 듣고 싶군요.

 

과연

그들의 소리가 슬픈 비명인지

후회없이 살다가는 기뿜의 노래인지

귀 기울여 꼭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그럼 그들은

오늘의 내게 어떤 말을 들려 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