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저도 나이들어 귀밑머리가 반백이 되고,

눈이 침침하여 돋보기를 끼어야 할 정도가 되었지만

 

한때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붉은 입술을 가진 짱구소년일 적도 있었답니다.

 

나이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고,,

요즘 들어 왜그리 제가 청소년시절에 보았던 구불구불한 논두렁과,

황토와 짚으로 거칠게  빚은 벽돌로  담을 세운 초가,

그리고

그 속에서 비록 헤어진 옷과 거친 음식을 먹고 살았지만 마음이 푸근했던 사람들이 자꾸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코밑에 솜털이 거뭇거뭇해지기 시작할 무렵

방학때만 되면 외갓집에 놀러가 저보다 한살 위인 외사촌 형과 산과 들과

그리고 온 동네를 쏘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 밤 동네 마실을 다녀 오던 중 야트막한 토담집을 지나치는 데,,

쏴아,,,철썩하고  목욕을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목욕탕이 따로 없어 여름이면 집안의 우물옆에서 두레박으로 시원한 물을 퍼 목욕을 했었지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저는 그 집에 사는 머리를 쌍갈래로 곱게 묶고 다니는 고등학생 누나가 퍼특 연상이 되었습니다.

 

당근, 그 목욕소리는 거부못할 힘으로 저를 그 토담벽으로 이끌어 매달리게 했지요.....

 

팔에 힘을 주고 담에 매달려 집안을 들여다 보는 순간,,

과연 그 집 지붕에 피어난 하얀 박꽃같은 달빛에 비친 그 누나의 속살이 눈에 화악 차 들어 왔습니다.

 

그 누나가 팔을 비스듬히 뻣혀 가슴과 겨드랑이 곳곳에 비누칠을 하는 장면을 좀더 자세히 보려고 눈의 촛점을 최대한 집중하면서

 

저는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지만 침삼키는 소리가 날까 두려워 그냥 흘리고 있었지요..^^

 

그순간 푼수없는 사촌형이 제 모습을 보더니만 바로

"뭐..보이냐!!..하면서 같이 제 옆에 매달렸습니다..

 

그 누나가 가슴과 겨드랑이를 다 씻고 이제 다리와 사타구니로 옮겨가는

가는 순간 두 소년은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듯 하였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느님은 거기까지만 허락을 하시더군요..

 

갑자기 몸이 앞으로 서서히 기울어지는 듯 하더니만,,

와수수...소리를 내면서 간당 간당하던 토담이 앞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안에서는 "끼악..엄마!" 라는 비명과 함께 그 누나는 한마리 노루처럼 튀어 들어 가고

 

먹빛 하늘이 빙글 돌고 수많은 별들이  제 눈앞에 우수수 쏟아져 내리면서

팔과 턱이 땅바닥에 패대기 쳐졌으나 통증을 느낄 수도 없었습니다.

 

"어떤 놈들이야!"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집 아저씨에게 두 소년은

무너진 토담 가운데에서 정신 없이 허둥거리다 붙들렸지요..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냐구요?

 

외사촌 형은 외삼촌에게 집안 망신 시킨다고 되지게 타작을 당하고

사건의 원인자인 저는 민망하게 서서 매맞는 형보다 더 아픈 마음을 추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땡볕에서 그 어여쁜 누나의 질시 속에서

토담을 쌓아 주느라 남은 여름 방학을 다 보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담을 쌓고있는 저를 지나치던 그 누나의 비웃음이 귓전에 아직도 쟁쟁합니다..

 

 

"흥!!,,,머리에 피도 안마른 쬐그만 것들이,,벌써.."